불교에서는 무상과 무아라고 합니다. 항상 하는 것이 없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무엇이 있어 해탈을 하는지요?

해탈을 하는 '나'도 없습니다. 해탈이라는 것은 '나'에 얽매여 있던 삶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있음이 있을 뿐이지, 깨달은 자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깨달은 자가 '자신이 깨달았다'는 상에 얽매여 있다면 그것은 아직 자아가 남아 있고, 아상이 다 없어지지 않은 것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깨달은 자'가 없다는 것은 깨달은 자라는 육신이나 존재 자체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자아에 갇힌 생각이 없다는 말이고, 무아와 무상을 완전히 자각한 채 고정적인 실체관념을 비워버렸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나 무아는 '없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연기한다'는 말입니다. 즉 있기는 있는데 그게 실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신기루처럼 환영처럼 잠시 있는 것 처럼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이겁니다. 바로 그러한 무아를 바로 깨닫는 것이 열반입니다. 그러니 ‘누가 있어서 열반을 하느냐?’ 하는 질문 자체가 오류를 품고 있어요. 열반을 하는 어떤 정해진 고정불변을 실체적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반한 자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실체가 없이 인연 따라 생겨난 존재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은 자란 말입니다. 무아를 바로 깨달은 자란 말이지요. 그러니 무아를 깨친 자에게 '나'라는 실체적 단어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나’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육근, 오온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셨습니다. 즉, 열반도 실체가 아니고, 고정된 무언가가 아닙니다. 열반을 실체시 하는 것은, 진리를 실체시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교는 불교 그 자체도 놓아버렸을 때, 드러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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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그저 나 자신, 순간의 여행자, 자연주의자, 사상적 자유인, 편견 없는 삶의 관찰자, 목탁소리(moktaksori.org/net/kr) 지도법사, [날마다 해피엔딩]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행복수업]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반야심경과 마음공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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