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미투

삶과 명상 이야기 2010/03/26 04:44 Posted by 법상
  • 백담사 수련중 3월말에 눈소식 정신이 번쩍 깨어나는듯(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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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도 내리고 산사의 찻집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에 눈 녹는 소리를 듣는다(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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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담사 찻집 차 한 잔도 사랑이고 눈이 오는것도 사랑이며 숨을 쉬는 것도 사랑이다 마침 들려오는 사랑의 새소리 세상은 온통 사랑으로 연주된다(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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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법상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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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미투

삶과 명상 이야기 2010/03/17 04:42 Posted by 법상
  • 산책길 인적없는 텅빈들녘 소로길을 구름처럼 걷다 고개들어 눈길을주니 앙상한 가지조차 선정에 든다 바람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개울물 소리는 봄을 타고 귓전을 씻어주네 하릴없는 삶이 흐른다(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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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말라.

진실은,

두려워 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두려워할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만 우리 스스로 두려움을 만들어 낼 뿐!

 

이 우주의 근원의 에너지는

언제나 사랑이요, 무한한 자비다.

실체라는 말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 말을 써야 한다면,

우리가 유일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자비와 사랑이라는 말 뿐일 것이다.

 

자비와 사랑이야말로 이 우주의, 우리라는 존재의

근원적 실체다!

나라는 존재의

근원을 이루는 에너지 파장은

오직 ‘사랑’이요 ‘자비’일 뿐이다.

 

그 어떤 존재도,

그 어떤 신도,

그 어떤 염라대왕이거나,

그 어떤 진리의 다르마도,

당신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 분들은,

성스러운 붓다며 신은,

우리 나약한 인간들을

시험에 들게 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벌을 주기 위해

온갖 지옥을 만들어 내거나,

온갖 고통을 만들어 내거나,

인간을 단죄하기 위한

온갖 다양한 틀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인간이 두려움에 떨어야 할

그 어떤 장치도 만들어 내지 않았다.

 

인간답지 못한 인간,

도덕적이지 못한 인간,

신을 믿지 못하는 인간,

계율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

온갖 악행을 일삼는 인간,

성적으로 타락한 인간,

그 어떤 최악의 인간들을 처단하고 벌주기 위해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무시무시하며,

두려움에 벌벌 떨 만한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이는

그런 지옥을, 지하세상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일 뿐!

오직 인간의 생각일 뿐!

인간의 욕심일 뿐!

 

부처는

다만 무한한 자비 그 자체이며,

신은

무한한 사랑 그 자체일 뿐이다.

 

그 분들은

인간을 단죄하고자 하는

그 어떤 의지도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

 

신은, 붓다는

오직 순수한 사랑일 뿐!

단죄하는 분이 아니다.

 

방편으로

계율을 율법을 지키라고,

죄를 짓지 말라고,

주의를 주기는 하셨을 지언정

그것을 어겼을 때

벌하기 위한

그 어떤 특단의 조치도 취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시다.

 

다만 그 모든 인간의 악행들을

아무런 판단도 없이 지켜보실 뿐!

 

그 분들의 시선에서는

악행, 선행이라는 차별이 없다.

다만 사랑으로 지켜보실 뿐이다.

 

선악을 넘어선 분이

선악을 구분지어 놓고

그 가운데 악을 행한 자만을 단죄하고

선을 행한 자를 선물주기 위해

어떤 특별한 조치를 취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생각일 뿐이고,

우리 멋대로 지어낸 신에 대한, 절대자에 대한

바람이고 환상일 뿐이다.

 

신은, 붓다는, 절대자는

아무런 판단도 없이

일체 모든 이들을 위해

다만 오직 사랑과 자비만을 준비해 두고 있다.

 

아니 신은, 붓다는, 이 우주는

그 자체가 사랑이요, 자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의 의식 속에는

지옥도 있고,

두려움도 있고,

고통도 있으며,

무시무시하고 소름돋는

최악의 지옥이 있다.

 

가짜로 있다.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속에

인연 가합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누가 만들어 냈는가?

 

그렇다.

신이 만들어 낸 것이거나,

붓다가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내었다.

 

가짜로.

생각으로 만들어 냈다.

그러나 생각은 에너지를 갖는다.

생각이 바탕이 되어 삶을 창조한다.

그러나 그렇게 창조된 가짜 세상일지라도

그것은 인간들에게 마치 진짜 같이 느껴진다.

 

고통도 진짜고,

지옥도 진짜고,

모든 것이 진짜처럼 생생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더 깊은 차원의 진실은,

그 모든 것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없다.

오직 사랑만이 있고,

오직 무한한 자비와 연민만이 있을 뿐!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삶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바로 그것이 창조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에너지를 쏟지 말고

삶을 사랑하는데 마음을 쏟으라.

두려워할 것이 없는 본연의 사랑이라는 세상에

생각으로 두려운 것들을 창조해 내지 말라.

 

세상이 당신에게 알려준,

종교가 당신에게 알려준,

사람들이, 선생님들이, 종교인들이 당신에게 알려 준

원죄에 속지 말라.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이었다.

삶은 두려워할 무엇이 아니다.

죽음 또한 두려워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다.

그것은 무한한 사랑이다.

무한한 아름다움이며, 무한한 지고의 기쁨이다.

 

죄를 지으면 지옥 간다고 했던

그 가르침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계율을 범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기지 말라는

그 가르침이

우리에게 죄의식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거기에 속지 말라.

신이 우리를 단죄한다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심판을 한 뒤 몇몇은 지옥으로 던져버린다고?

계율을 어기면 지옥에 간다고?

 

지옥은 없다.

죄 또한 없다.

그렇기에

두려워해야 할 그 어떤 것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항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옥이 없고, 죄 또한 없다면

잘못을 저질러도 되고,

악행을 저질러도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물론 상관이 있다.

물론 지옥에 떨어진다.

큰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신이 준비해 둔 것이거나,

부처님께서 만들어 놓은 곳이 아니며,

더욱이 그 곳은 실체적인 곳이 아니다.

 

똑같은 상황이

어떤 사람에게는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천상을 경험하게 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은 연봉 3,000만원이 괴로움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이 한없는 즐거움이지 않은가.

 

배가 터지도록 부른 사람에게

자장면 곱빼기는 고통을 가져오지만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그것은 천국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고통을 받지만

그 고통은 자신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지옥에 떨어지지만

그 지옥은 실체적인 어떤 영역에 신이 만들어 둔

절대적인 영역이거나, 절대적인 곳이 아니라

다만 스스로 만들어 내고

스스로 그 곳에 빠져 괴로워하기로 선택한 그런 곳이다.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지옥을 경험할 수 없다.

그러니 있지도 않은 지옥을 생각으로 만들어내어

그곳에 떨어지면 어쩌지?

죽고 나서 지옥에 가는 건 아닐까?

하고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함으로써 있지도 않은 지옥을

스스로 만들어 내지 말라.

 

우리가 두려움에 떨면

그 두려움으로 인해

두려운 세상을 창조한다.

지옥에 가게 될까봐 걱정 근심을 한다.

 

누구나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마음 속에는 지옥에 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그 두려움이 지옥을 창조해 낸다.

 

그러니 두려움에 떨지 말라.

두려움으로 인해 지옥을 창조해 내지 말라.

두려운 마음이 지옥을 만들고,

죄의식이 죄를 만든다.

 

마음 속에

지옥을 품지 말고,

두려움을 품지 말고,

죄의식을 품지 말라.

그것을 품음으로써 그것을 창조하지 말라.

 

대신에

마음 속에

무한한 사랑을 품으라.

무한한 동체대비의 자비로움을 품으라.

 

신은 무한한 사랑이며,

붓다는 무한한 자비로움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죽음을 사랑하라.

죽음이 두려운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오히려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은

죽음은 경이로운 것이라고 말한다.

 

삶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래를 두려워하는 대신,

지은 죄를 두려워하는 대신,

삶을

자신을 무한히 사랑하라.

 

삶도 죽음도 경이롭다.

그 둘은 둘이 아니며

그것은 사랑이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가 아무리 달려갈지라도,

아무리 벗어나려고 애쓸지라도,

혹은 아무리 도달하려고 애쓸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사랑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 뿐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 자신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주어진 삶을 사랑하라.

다가올 미래를 사랑하라.

진리를, 신을, 붓다를 사랑하라.

 

오직

다만

사랑이기만 하라.

 

두려움도,

고통도,

죄의식도,

근심 걱정도,

지옥도,

죽음도

모두

사랑으로 감싸 안으라.

사랑 안에 녹아내리게 하라.

 

본래부터 그것은 없던 것이고,

가짜일 뿐이니,

진짜로 가짜를 품어 안으라.

 

사랑할 때,

사랑이 창조된다.

아니 본래 사랑이었음을 보게 된다.

 

우리의 삶의 여정은

언제나 사랑으로부터 출발하여

사랑을 향해 도착할 뿐이다.

 

영적인 진보,

수행의 완성,

그것은 곧 잊고 있었던 사랑을 되찾고,

사랑이라는 근원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숭고한 귀의(歸依)의 여정을 뜻한다.

 

우리 모두는

머지않아

사랑과 하나될 것이다.

무한한 자비로움을 체험할 것이다.

 

두려움이라고 불리우는

가짜에 속아오던 것을 깨닫는 순간,

바로 사랑과 자비의 파장으로 춤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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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미정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나 좋은 글,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2010/04/29 08:35


 

 

오후 나절,

하늘은 화창하고,

푸르름은 너무도 높고,

몽실몽실 떠가는 구름은 아름답고,

바다색은 너무도 짙고,

고개 들어 산을 바라보면 희끗희끗 눈덮인 산맥이 성스럽고,

그 청명한 하늘 위로 자유로이 갈매기 떼들이 떼지어 날고 있습니다.

 

아, 이 곳에서의 삶은

하루 하루가 여행이며 만행이고,

모든 걸음 걸음이 히말라야이며,

매 순간 순간이 휴가이자 휴식입니다.

 

시선 가는 곳마다

영적이고

고요하며

신비롭고도

경이로운

아니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되지 않는

특별한 빈 공간이 꽉 차게 느껴집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내가 발 딛고 살아가고 있구나!

매일 매일 흙냄새 맡으며 걷고

바닷바람과 포구를 거닐으며

저 고요한 산맥을 벗삼아 살고 있구나!

 

 

 

 

휴가나 여행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쉼, 설렘, 떠남, 평안 등의

일상적이지 않은 아주 특별한 상황을 의미하는데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휴가나 여행은

어떤 몸이 떠나있는 상태를 의미하기 보다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매일

우리는 잠시의 멈춤으로써

휴가와 여행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길을 걷고

길 위의 모든 존재에 눈빛을 보내며

따뜻한 사랑을 보내며

묵연히 걷기만 할 때

이 모든 존재와 하나됨을 경험합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잠시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솟아오른 눈덮인 설악의 산맥을 보고 있자면

그 순간 바쁘고 정신 없던 일들은 사라지고

나는 지금 어느덧

히말라야 깊은 산 위를 걷게 됩니다.

 

아무리 해야 할 일로 번거롭다 할지라도

잠시 호흡에 마음을 모으고

맑고 시린 공기를 깊숙이까지 품어안았다가

내보내는데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나는 어느덧

2,500년 전 붓다의 영산회상 한 켠에 앉아있는

그 성스러운 제자들 중 한 사람이 되어있곤 합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다가도

잠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이 곳은 익숙한 일터이거나

생존경쟁의 장이 아닌

호젓한 여행자가 머무는

인도의 시골마을 고즈넉한 게스트하우스가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처해 있는 바로 그 자리를

휴식으로, 쉼으로,

여행으로, 휴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아니 본래 우리의 삶이

그렇듯

고요하고 신선한

쉼이었고, 여행이었으며, 휴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주 단순하고도 간단합니다.

그것은 전혀 힘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구름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돌려 길 가에 앙상하게 피어난

겨울 나뭇가지를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책을 보다가도, 신문을 읽다가도

잠시 보고 읽는 것을 멈추고

호흡의 들고 남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행여 TV에 정신이 팔려 있었더라도

잠깐 TV를 끄고

그저 텅빈 빈 벽을 주시하며

내면의 아주 작고 여린 움직임을 관찰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루 중에,

하루 일과 중에,

익숙하던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잠깐 잠깐

단 10초라도 좋습니다.

 

몸으로 말로 생각으로 행하고 있던,

바로 그 모든 행위를

잠시 비우고, 멈추고,

아주 낯선 시선으로

전혀 텅 빈 시선으로

속 뜰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바로 그 ‘멈춤’의 순간

위대한 신의 사랑과 축복이 깃들고,

붓다와 모든 성인의 깨어있음이

바로 그 자리에서 함께 하게 됩니다.

 

 

애써 한 시간, 두 시간 이상을

억지로 시간을 내서,

바쁜 가운데 짬을 내서,

절이나 선방에 찾아 가서

가부좌 트는 법을 배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주 잠깐,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참선을, 명상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니 이것을 참선이나 명상이라고

애써 이름짓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그저 텅 빈 순수 그 자체이고,

깨어남이며,

모든 선각자들의 방법이었으며,

붓다의 방식입니다.

 

잠깐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그 때가 바로 휴가가 되고,

잠깐 숲으로 난 길을 걸을 때

그 순간이 곧 여행이 되고,

잠깐 생각을 멈추고 호흡을 지켜보는 순간

그 때가 바로 명상이 되며,

잠깐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순간

그 때가 바로 깨어남이 되고,

잠깐 내 앞의, 옆의 동료며 가족들을

편견 없이 마음을 비우고 낯설고 새롭게 바라볼 때

그 때가 바로 사랑이 되고,

이렇게 잠깐 잠깐 일상에서 멈추고 바라볼 때

우리는 지금 이 자리가 완전한 때임을 깨닫게 됩니다.

 

명상은 거창한 무엇이 아닙니다.

수행은 근기가 높은 특별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너무 멀리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구도의 길을 간다는 것에 너무 거창한 환상을 덧칠하지 마십시오.

 

본래 수행, 명상이라는 것이

그렇듯 피나게 노력하고 애쓴 끝에

소수의 사람만이 경쟁에서 승리해 쟁취해 내는

그런 논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다는 그간의 편견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고서는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 되고 말 뿐입니다.

 

그 편견을 놓으십시오.

백일 기도, 천일 정진, 동안거, 선방, 철야정진...

이 모든 거대한 편견들이 수행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그 또한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어려운 길만이 가장 옳은 길이거나,

유일한 길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매 순간 순간

일상에서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자주 자주 멈춤과 바라봄의 때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고도 쉽습니다.

아주 쉽지만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질 것입니다.

 

사실은

‘지금 여기’라는 곳이야말로

모든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실은

나라는 존재야말로

완전하고도 충만하고 꽉 찬

더 이상 얻어야 할 또 다른 힘을 필요치 않는

무한한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본래 있던

힘과 지혜와 사랑을

없다고 착각하고 살다가

아주 작은 ‘멈춤’과 ‘봄’을 통해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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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미투

삶과 명상 이야기 2010/03/12 04:43 Posted by 법상
  • 모처럼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아침입니다 자연의 신비가 영혼을 씻어주고 세상을 일깨워 줍니다(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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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미투

삶과 명상 이야기 2010/03/11 04:43 Posted by 법상
  • 3월의 눈이 세상을 온통 하얗게 수놓고 있습니다 5일째 눈이 내리다가 잠깐의 햇살이 행복감을 안겨주네요 아 아름답습니다(me2mms me2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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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보살님께서
불법이 담겨 있는 책들을 항상 가까이 놓아두고
자주 읽어본다고 하시는데
때때로 신기한 것을 경험한다고 하신다.

때때로 자식 문제로 고민이 있다거나,
남편과의 다툼이 있었다거나,
혹은 사회생활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고민들로
답답해 하면서 답을 찾다가
우연히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볼 때,
종종 마침 바로 거기에 그렇게 궁금해 하던 답변이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마치 나를 위해 설법한 것처럼 생생하게 말이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든 때때로 일어난다.
우리가 어떤 궁금한 것이 있어서 답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모처럼 켠 TV에서 그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하기도 하고,
우연히 펼친 신문에서
평소 같으면 그저 지나쳤을 작은 기사 속에서 그 답을 찾게 되기도 한다.

또 우리가 새롭게 무언가를 공부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그 전에는 그 공부한 것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가
내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공부하자마자
갑자기 그런 내용들이 TV를 켜면 TV에서 나오고,
책을 보면 책에서 나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 얘기를 하기도 하고,
내가 이것을 공부하지 않았으면 망신당할 뻔 했구나 싶을 때도 있는 등으로
동시적으로 현실에 나타나게 되기도 한다.

아주 쉽게는 내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려고 수화기를 드는 순간,
바로 그에게 전화가 오는 것 또한 이런 작은 예일 수 있다.

이것을 칼 융은 동시성(同時性)으로 설명하고 있다.
칼 융이 한 여인을 치료하는데,
그 여인이 하루는 풍뎅이 꿈을 꾼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칼 융은 그것이 고대 이집트에서 환생을 상징한다는 것을 떠올리며
환자의 무의식이 심리적 재탄생을 겪을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있을 때
창문 밖에 풍뎅이가 날아온 것이다.
물론 융은 그 때가 그곳에서 풍뎅이를 본 유일한 때였다.

이러한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를 동시성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 더 깊은 차원, 감추어진 질서에서 보면 우연이 아니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피트는 이러한 융의 동시성이
‘감추어진 질서’를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본다.
겉에 드러난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감추어진 질서가 있으며,
그 감추어진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봄의 견해에 따르면 만물이 비롯되는 근원인 감추어진 질서 속에서는
마음과 물질이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는
‘더 깊은 차원’ ‘감추어진 차원’에서 다루어진 일이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
우리 눈에 우연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더 깊은 차원의 법계에서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그 자리에 온 것이다.
우리의 깊은 차원은 인다라망 그물코처럼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닌 정확한 인연으로 바로 그 자리에 오게 된 것이다.

더욱이 그 감추어진 질서라 불리우는,
우주법계의 근원적 질서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다.

부처님은 새로운 진리를 만들어 내신 분이 아니라,
온 우주의 더 깊은 이면에 담겨 있던 본래 완전했던 진리를
다만 발견하신 분이라고 했다.

사실, 진리는 온 우주에 충만하게 꽉 차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동시성이라는 방식으로 때때로 체험하곤 한다.

우리는 질문을 던지면 언제든 진리의 차원에서 그 답을 들을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뭣고’ 하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화두선의 방법 또한 이러한 바탕 위에서 성립되는 수행법이다.

그래서 피트는 동시성을 자연의 배후에 감추어져 있는
광대한 질서를 힐끗 엿볼 수 있게 하는 찰나적인 틈새라고 믿는다.

바로 그렇다.
이 겉에 드러난 몽환포영(夢幻泡影)의 세계 이면에
완전하고 충만한 진리가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

다만 우리의 아상과, 아집, 탐진치 삼독과 무명이
그것을 바로 보는 것을 제한할 뿐이다.
그러나 잠시라도 마음을 쉬고, 내면을 살펴 본다면
그 무한한 진리의 세계를 힐끗 엿보게 될 수 도 있을뿐더러,
그 세계와의 깊은 연결을 이룰 수도 있으리라.

삶의 본질에 이르고 싶다면,
깨달음을 얻고 싶다면,
마음을 비우고 질문을 던지라.

세속적인 질문에서부터 진리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해답을 법계에서는 항상 준비해 두고 있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할 뿐!

질문을 던지면 우주법계는 언제나 거기에 답을 할 것이다.
물론 그 답변은 꼭 현자의 입을 통해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책이나, 신문에서,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서, TV에서나,
아니면 문득 내면에서 올라오는 직관을 통해서도 나올 수 있다.

그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마음을 닫아 걸지 않는다면,
활짝 열린 맑은 정신 안으로 진리가 문을 두드릴 것이다.

스승에게 묻는 것, 부모님께 묻는 것,
친구들에게 묻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이제부터 우주법계의 진리 그 자체에 직접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떤가.

내면의 진리, 우주법계의 진리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직접적이며 본질적이다.

또한 나를 위해 준비해 둔 법계 본연의 계획에 입각해
무한한 자비와 지혜로써 내리는 답변이 될 것이다.

에둘러 가던 버릇을 돌이켜 내면으로,
법계로 직접 노크 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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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명상 이야기 2010/03/02 04:42 Posted by 법상
  • 고독과의 친밀함 속에서만 인간은 스스로를 발견한다/ 영화 시월애 중에서 #
  • 오늘도 하루 종일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습니다. 광주에는 매화가 피었다는데, 고성은 3월 폭설입니다. 그래도 한창 때의 눈 같지는 않습니다. 눈 속에서 봄꽃이 보이고, 싸늘함 속에서도 따스한 대지의 호흡이 느껴집니다. #
  • 이렇게 눈이 내리면 세상으로 난 길이 끊기고 도량은 눈 속에 잠긴 섬이 됩니다. 모처럼 온전히 홀로 있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고독의 최적의 상태가 되지요. 하루 종일 내리는 눈이 좋은 이유. #

이 글은 법상님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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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그저 나 자신, 순간의 여행자, 자연주의자, 사상적 자유인, 편견 없는 삶의 관찰자, 목탁소리(moktaksori.org/net/kr) 지도법사, [날마다 해피엔딩]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행복수업]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반야심경과 마음공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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