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14일차

순례, 삶이라는 또 다른 히말라야로

몸살감기에 간절한 차 한 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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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중의 아침이 창창하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진하디 진한 물감을 한껏 풀어 놓은 것처럼 선벽하고 햇발은 그 어느 날보다도 쨍하게 빛난다. 어디 하나 보유스름한 것이라곤 없어 보인다. 아주 선명한 렌즈를 낀 것처럼, 세상에 샤픈(sharpen)을 강하게 준 것처럼 세상이 또렷하고도 역력하다. 저 앞산 뒷산만 없다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가시거리는 무한대가 되고도 남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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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장하고 쨍한 아침을 맞이하는 몸이 무겁다. 마음은 경쾌한데 몸은 으슬으슬 떨려온다. 순례길도 이제 다 끝났구나 싶어 어제 밤에 모처럼 목욕을 하고, 2주 동안 벗지 않았던 내복을 벗고 잤더니 밤새 감기몸살이 찾아 온 것이다. 조금 더 참았다가 카투만두로 완전히 내려가서 목욕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그래서 여행을 다닐 때도 끝까지 주의 깊게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지 다 끝났다고 마음을 풀어헤치면 안 된다고 하던 어르신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구나 싶다. 그래도 한 편 다행인 건, 이 감기몸살이 이렇게 안나푸르나며 에베레스트 순례를 다 마친 뒤 찾아왔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욱이 다음 일정인 미얀마까지는 아직 일주일 정도 시간 여유가 있으니 그 동안에 카투만두에서 몸을 쉬며 건강을 되찾을 수 있으니 그 또한 고마운 일이다.

오늘은 처음 카투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던 루클라까지 되돌아가는 일정이다. 쿰중에서 남체바자까지는 그저 언덕을 하나 넘으면 되는 거리다. 올라올 때는 루클라에서 남체바자까지 이틀이 걸렸고, 고산 적응을 위해 남체바자에서 하루를 더 묵었으니 총 3일이 걸렸지만, 내려갈 때는 하루라도 충분하다.

쿰중을 떠나는 발걸음에 아쉬움과 아련함이 묻어난다. 계속해서 몇 번이고 이 쿰중의 소담한 마을을 뒤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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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바자로 가는 언덕을 넘기 위해 힐러리 학교를 지난다. 힐러리 학교는 쿰부 지역의 명문학교로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힐러리 경의 재단에서 세운 학교다. 워낙 유명한 명문학교로 자리 잡은 터라 남체바자에서도 샹보체 언덕을 넘어 이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니,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식을 위한 교육열은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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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옆으로 하얀 초르텐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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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르텐을 지나 샹보체 언덕 쪽으로 가는 길 좌우에는 담장 대신에 높다란 마니석이 줄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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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반쯤 올라 뒤돌아보니 쿰중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샹보체에 오르니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10일 쯤 전에 들른 곳이지만 어제 들렀던 것처럼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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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바자와 하얀 꽁대 설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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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바자를 지나 한 발 한 발 지켜보며 묵묵히 내려간다. 걷다보면 조금 나아지려나 했는데 갈수록 몸은 더욱 무겁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 보통은 만성 비염 때문에 겨울이 오는 길목에 날씨가 추워지면 한 번씩 몸살과 코감기를 앓곤 했지만 따뜻한 차를 꾸준히 마시면서 언제나 쉽게 낫곤 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지간히 아파도 약을 먹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감기가 걸리면 언제나 차를 찾았다. 최소한의 차를 마시기 위한 다식(茶食) 정도의 의미로 소량의 공양을 한 뒤 언제나 따뜻한 차로 몸을 덮여주고 나면 쉬 감기는 떨어져 나가곤 했다. 몸이 이렇게 떨려오니 자연스레 황차나 보이차, 오룡차 같은 발효차 생각이 간절해진다. 처음 인도로 떠나올 때 황차, 녹차, 보이차, 오룡차 등 다양한 차들을 조금씩 가져왔는데 오랜 여행 속에서 다 마셔버려 이제 한 번 마실 정도의 보이차 밖에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차가 귀하다 보니 뜨거운 물로 몇 번이고 우려내어 더 이상 차색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우려 마시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따뜻한 물도 한 잔에 얼마씩 사 먹어야 하다 보니 남은 보이차를 여기에서 먹기가 꺼려진다. 남은 보이차 조금을 가지고 한 주전자 이상은 반복해서 우려 먹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때문에 조금 힘들어도 이곳 롯지에서 파는 레몬차 같은 것을 사 먹고 버텨 보다가 카투만두에 도착하면 뜨거운 물을 잔뜩 준비해 두고 남은 보이차를 음미하며 마시리라는 상상을 하면서 걸어 내려간다.

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행길에서 때때로 가져 온 차를 마시며 차에 대한 감사와 찬탄과 감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배가가 되곤 했다. 한국에서야 차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또 내가 차를 좋아하는 줄 알고 지인이나 벗들이 차 선물을 더러 해주었다. 평소에는 적당량의 찻잎을 다관에 넣고 진하게 우려 마시면서도 차의 고마움이나 그 향기와 맛에 대해 그다지 깊이 누려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이런 여행길에서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여행길에서는 가져 온 차가 많지 않다 보니 처음부터 찻잎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넣어 연하디 연한, 때로는 그야말로 차인지 맹물인지 분간도 안 될 만큼 연하게 우려 마셨고, 그것도 열 번도 넘게 우려 마시면서 그 날 마시고 나서 그 다음날에도 뜨거운 물을 부어 몇 번을 더 우려 마시고 내가 생각해도 참 애쓴다 싶을 정도로 아끼곤 했다. 그러다 보니 차에 대한 감사함과 행복감이 몇 배는 더 크게 증폭되고, 차향과 차의 맛이 얼마나 깊고 그윽한지에 대해서도 더 깊이 우러나오게 된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이끌고 걸어가며 따끈한 한 잔의 보이차를 떠올리다 이내 포기하고 묵묵히 다시 걷는다. 마음 같아서는 어제 고쿄에서 쿰중까지 가볍게 걸으면서도 너무 쉽게 내려온 것을 떠올리며 한 걸음에 루클라까지 도착할 것 같았는데 몸이 무겁다 보니 길은 더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먼 길에 대해서도 고민한들 무엇 하랴, 미리 도착에 대한 애착을 포기한다. 빨리 나아야 한다는 생각도, 건강에 대해서도 마음을 비우고 그저 걷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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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바라보는 즐거움

 

몸이 아프니 오히려 다른 잡념이 생기지 않아 좋은 점도 있다. 잡념이나 상상, 계획, 욕구, 바람, 과거나 미래 따위의 모든 생각의 에너지도 힘을 잃고 뒤안으로 물러나 있다. 그러다 보니 걸으며 걸으며 그야말로 걷기만 할 수 있다. 아니 그저 걷기만 할 뿐, 다른 아무것도 할 기운이 없다. 심지어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려 낼 에너지 조차 죄다 고갈된 듯 하다.

무거운 몸을, 한 발도 내딛기 힘든 묵직한 몸을 한 발자국 떨어져 관찰해 본다. 아픈 내가 힘겹게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 어떤 한 존재가 그저 걷고 있음이 보인다. 아무런 생각도, 해석도, 판단도 붙이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를 바라보며 걷는다. 신기하게도 몸은 건강하고 쨍쨍할 때보다 이렇게 주춤거리며 아플 때 한결 지켜보기는 쉽다. 그리고 그렇게 아픈 가운데에도 아픔을 바라보는 것은 전혀 아프지가 않다. 그저 아프다고 이름붙인 어떤 현상이 거기에서 전개되고 있을 뿐. 오히려 그 느낌을 지켜보면서 한편에는 미묘한 즐거움이랄까, 바라봄에 대한 깊고 내밀한 차원을 누려보게 된다. 내가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프다고 이름 붙인 어떤 현상이 사실은 그렇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느낌으로 느껴지고, 거기에 그런 현상을 충분히 느끼며 걷는 한 존재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무겁지만 무거움을 바라보는 것은 무겁지 않다. 으슬으슬 떨려오지만 그 떨림을 바라보는 것은 떨리지 않는다.

우리가 아상(我相), 에고라고 부르는 것은 이처럼 꺾일 때 오히려 그 너머의 차원에 가 닿기 쉬워지는 것이 아닐까. 건강할 때, 잘 나갈 때, 주목 받을 때, 아상은 한없이 자기 잘난 생각에 빠져 잘난 자신이 실체적이며 실존적이라고 믿는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을 낮추는 생각과 이어져 나와 너를 나누고 차별한다. 아상이 높은 이는 아상 너머의 보다 깊은 차원의 영적인 길을 걷기 어렵다. 그러나 아상이 꺾일 때, 비로소 그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보다 깊게 바라보게 된다.

사람도 20대, 30대, 40대를 거치며 아주 잘 나가고 돈도 벌고 명예도 늘려나가는 시절에는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 진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잘 나가던 사람이 꺾이고, 건강하던 사람이 건강을 상실하고, 부자가 가난해지며, 명예도 지위도 떨어지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과 진지한 통찰이 시작되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세상에서 보면 실패한 것 같고, 좌절된 것 같고, 상실된 것 같은 바로 그 때가 수행과 명상이라는 영적 전통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각성(覺性)의 시작이 되는 때와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가.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은 출세간에서 보면 위기이고, 세상에서 한풀 꺾이는 것은 오히려 출세간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것이다. 그러니 더 크게 본다면 어느 한 쪽을 더 반기거나 어느 한 쪽을 밀어내려 애쓸 것도 없다. 좋다고 붙잡아 집착하거나 싫다고 버리려 애쓸 것도 없고 좋고 나쁘다는 그 양변의 집착을 모두 여의고 삶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수행자의 걸림 없는 길이다.

아프다는 상황도 더 큰 차원의 질서에서 본다면 나를 돕기 위한 우주 법계의 자비로운 도움의 손길인 것이다. 이 아픈 상황으로 인해 나는 좌절할 수도 있고, 오히려 자비와 사랑이 바탕 된 우주의 도움으로 여기며 감사히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더라도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일들은 언제나 완전하고 완벽한 우주의 사랑이며 자비로우신 배려다.

이 세상은 언제나 완벽하다. 모든 것은 완전하다. 우리 삶에 어느 한 가지 사건도, 사람도 불완전하거나, 불필요하거나 쓸모없이 일어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정확한 우주적인 필요에 의해,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시점에 내 몸에서 왜 감기 몸살이 오게 되었는지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그 이유나 목적을 다 알 필요도 없다. 분명한 것은 그것은 나를 돕기 위한 우주적인 사랑으로 온 것이며, 바로 지금 나에게 바로 그것이, 그러한 상황이 전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을 애써 밀어내거나 붙잡아 집착함 없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로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나의 사명이요, 이 순간의 몫임을 아는 것으로 족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남체바자에서부터 루클라까지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려 온 그 한나절의 때가 나의 이번 순례를 아름답게 회향하도록 해 준 소중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 하루 동안의 걷기야말로 어느 순간보다도 진한 ‘오직 걸을 뿐’의 깊은 침묵의 순간이었다. 오랜 순례를 생각으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생각 너머의 깊은 침묵과 텅 빈 비움으로 맑혀주고 씻어준 감사한 걷기가 아니었던가.

남체바자에서 처음 걸어 내려올 때 무거운 몸 때문에 일어났던 모든 분별심들이 루클라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묵직한 침묵의 향기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돌아보니 루클라까지 내려오면서는 주변을 전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 구간의 이미지나 영상이 아무리 돌이켜 떠올리려 해도 전날들처럼 생생하게 떠올려 지지가 않는다. 사진도 한 장 찍지를 못했다. 처음 순례를 시작할 때 모든 구간 구간을 사진에 담아 두고두고 순례를 기록하리라 생각했던 그 생각마저 내려놓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아팠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그저 자신과 함께 오직 걷기만 하는 행운과 회향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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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루클라에서

루클라 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루클라 이정표 앞에서 외국인 여행자 몇몇이 자랑스럽다는 상기된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저들도 나처럼 이 긴긴 여정을 끝내고 처음 그 자리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들을 향해 일종의 연대감 섞인 환한 미소와 박수를 보내며 걸어가는데 사진 찍기를 마친 그들이 나를 향해 힘찬 박수를 보내며 환호를 해 주고 있다. 이렇게 산 친구들은 쉽게 쉽게 벗이 되곤 한다.

롯지를 잡기 전에 먼저 비행기 표를 교환하기 위해 여행사에 들른다. 3일 후 아침 카투만두 행 비행기 표를 내밀며 내일 아침 비행기 표로 바꿀 수 있는지를 묻는다. 사실 표를 바꿀 수 없으면 며칠 루클라에서 머물면서 쉬다가 내려가야겠구나 싶어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쉽게 다음날 아침 비행기 표로 바꾸어 준다.

마을 입구의 롯지에 방을 잡고 잠시 앉는다.

쉼!

묵연히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것들을 살피며 안으로 쉼의 빛을 쪼인다. 가물가물 앉은 채로 나른한 선잠에 빠져든다. 잠시 졸았던 것 같은데 시계의 긴 바늘이 한 바퀴를 돌고 있다. 찌뿌드드한 몸을 이끌고 루클라 시내를 잠시 걷기로 한다. 이미 해는 기울었고 루클라에 어둠이 찾아오고 있다.

카투만두에 현지인 오랜 벗에게 연락을 했더니 다행히도 미얀마 비자가 발급되었고 계획대로 미얀마 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반가운 연락이 왔다. 미얀마는 비자를 받고 2달 안에 들어가야 하는 조항이 있는 나라인데, 나는 인도와 네팔에서 2달 이상을 보내다가 미얀마로 들어갈 예정인 터라 미얀마 비자를 한국에서 받지 못하고 왔었다. 여행자들에게 물었더니 인도에서 미얀마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어느 누구도 네팔에서도 미얀마 비자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해 주는 이가 없었다. 미얀마 대사관이 있으니 당연히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산에 오기 직전 미얀마 대사관에 신청을 해 놓고 나머지 업무를 벗에게 일임하고 왔었는데 이렇게 잘 되었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이른 저녁을 먹고 잠에 든다. 밤새 오들오들 떨며 뒤척이다 새벽을 맞는다. 8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식사 후에 짐을 정리하여 공항으로 간다. 한두 시간 일찍부터 비행기를 타려는 여행자들로 붐빈다. 작은 비행기들이 그 작은 활주로 하나를 공유하며 쉴 사이 없이 앵앵거리며 오고 간다. 몇 대가 그렇게 오고 간 뒤에야 내가 탈 비행기의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들린다.

아, 이곳과도 이제 작별이구나. 언제 또 다시 이곳에 와 보게 될까. 이번 생이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올 수가 있기는 할까? 이 곱디고운 아름다운 순례길 위를 언제 다시 걷게 될 것인가.

바로 지금!

생의 매 순간 순간은 언제나 순례길이며, 여행길이다. 히말라야는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매 순간 순간에 거기 그렇게 언제나 있다.

히말라야 순례를 마감하며 또 다른 삶의 히말라야를 내딛는다. 히말라야는 지리적인 어떤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꽉 짜여 진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 어떤 묶임으로부터의 벗어남, 욕심과 집착 속에서 허덕이다가 문득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한 생각 돌이켜 내려 놓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놓여나는 해탈, ‘내 삶은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하는 고정된 꽉 짜여진 일과와 틀로부터 훌쩍 벗어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인생’이었음을 돌연 깨닫게 되는 바로 그 순간, 바로 그러한 일상적인 틀로부터의 떠남이 바로 해탈이요, 여행이며, 순례의 길이다.

탐욕, 집착, 성냄, 질투, 짜증, 증오, 미움, 서러움, 외로움, 두려움, 이기심 등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홀연히 지켜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여행길이며 벗어남의 길이다. 마음이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고,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으며,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삶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여행길이며 삶 속의 히말라야다.

히말라야를 열두 번도 넘게, 수백 번도 넘게 오르고 내린들 자기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아집과 에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떠남도 아니고, 순례도 아니다. 그러나 일상의 그 모든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틀과 울타리와 고집과 생각과 번뇌와 차별적인 모든 마음에서 놓여날 때,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삶의 순례 길을 걷는 것이고, 투명한 히말라야 오랜 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가? 히말라야를 그리워하는가? 삶이 팍팍해서 여행이나 떠나볼까 하는 여행자도 있고, 풀리지 않는 꽉 막힌 삶의 흐름을 여행을 통해 뚫어보려는 이도 있으며, 그저 여행을 업처럼 삶처럼 되풀이하는 이도 있다. 때로는 너무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마음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는 이도 있다. 그러나 여행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삶의 여행이다. 인생의 여정을 경건한 순례의 길로써 여기는 자에게는 매 순간의 삶이 바로 거룩한 순례의 길이며, 그러한 이가 바로 구도자이며 또한 순례자다.

비행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순간 하늘로 솟아올라 타원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그간의 쿰부의 순례 길을 비춰 준다. 점점 멀어지는 쿰부 계곡과 설산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이제 진짜 순례가 시작되는 것이다. [에베레스트/고쿄 순례기.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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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고쿄 라운딩 12일차

하산, 신의 거처 마체르모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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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설산 마을에서 한생을 유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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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잠긴 고쿄의 새벽을 두드린다. 서리차고 맑은 공기가 호수의 시린 안개와 어우러져 고쿄는 더없는 신비에 잠긴다. 이 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바지 단잠을 몰아 자느라 이 선경과 만나지 못한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먼동에 호수도 언덕도 봉우리도 마을도 사람들도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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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천 년, 몇 만 년 전의 인류가 태어나기 이전 지구 행성의 모습도 이러했으리라. 오직 태곳적 비경과 침묵과 이제 막 시작된 대자연의 여리고 깊은 몇몇 생명들이 자유롭게 이 드넓은 대지와 초원과 푸른 언덕을 누벼왔을 터다. 그리고 어쩌면 그 푸른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이곳 쿰부의 자연은 그다지 큰 훼손 없이, 변화 없이 인류의 자취를 최소한으로 줄여가며 본연의 모습을 지켜왔을 것이다. 그 장대한 역사와 숨결이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안에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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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는 하릴없는 내리막의 연속이다. 마음은 더없이 홀가분하고 몸도 가볍다. 이른 첫 아침 식사를 먼저 시켜먹고는 지텐과 함께 여유로운 길을 나선다. 호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싱그러운 내음을 맡으며 신새벽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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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쿄 호수를 지나니 또 다른 작은 호수 타보체초(Taboche Tsho, 4740m)를 만난다. 호수 옆 작은 초원 언덕에는 발아래 적당히 부서진 바윗돌들을 정성으로 쌓아올려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자연 초르텐들이 다보탑, 석가탑 못지않은 고색창연함으로 그렇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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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을 분주히 오가는 짐꾼들의 발걸음도 가볍다. 걸음과 걸음 사이에 반짝이는 햇살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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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넘어서면서부터 타보체초 호수로부터 흘러나온 물줄기가 개울을 이루더니 이내 거대한 계곡물로 바뀌며 길 위에 물과 바위와 바람의 악기로 연주되는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주고 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생명력 넘치는 음악처럼 계속된다. 발걸음에도 선율이 여울진다. 그 계곡을 작은 다리로 건너가고, 그 아래로 계곡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더니 이내 물소리가 클라이막스를 연주하듯 장쾌하게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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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으니 점차 물소리가 멀어지고 가훼(嘉卉)의 초원 길, 푸른 언덕, 그림 같은 작은 집들 몇 채가 이취를 자아니며 느릿느릿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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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은 이제 저 멀리 발아래 깊은 곳으로 뚝 떨어졌다. 그리고 깊은 계곡 건너편 산 중턱에는 외진 마을, 외딴 마을, 그리고 외로운 마을, 작은 세 마을이 지척의 거리에서 외로움을 서로 달래주며 의지하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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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쿄 고을 단한한 고독경 속에서 이처럼 멀지 않은 곳에 도반과도 같은 이웃 마을이 끊일듯 끊일 듯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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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생의 무수한 윤회 가운데, 이 올연한 산중에서 고고히 한 생을 삭거(索居)해 보는 것 또한 아름다운 것이리란 생각이 스친다. 여러 생을 깨어남에 바친 눈밝은 수행자라면 그런 한 생의 유적함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고방한 독성(獨聖)의 경지를 밝혀낼 수 있으리라.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의 발걸음과 요 며칠 동안의 성산 순례가 이미 한 생의 삶이 아닌가. 육신의 나고 죽음을 한 생이라고 이름 붙여서 그렇지 사실 삶은 계속된다. 계속되는 영원한 삶 속에서 겉모습의 작은 변화에 따라 우리는 나고 죽음이라고 이름붙이고 있을 뿐이다. 사실은 매일 매일이 하나의 생(生)이고, 매 순간이, 하나의 호흡지간이 곧 하나의 생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건도 한 생이며, 한 사람과의 관계 또한 한 생의 사건이다. 이렇게 성스러운 히말라야에서 걷고 걷고 또 걸으며, 쉬고 또 쉬면서 어쩌면 짧지만 하나의 진한 생을 유유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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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음은 이어진다. 내 발걸음과 연하는 길 또한 더 이상 인간계의 그것이 아니다. 초원의 언덕 뒤로 번쩍하듯 설산이 솟아올라 있고 그 언덕 아래 이 속에서 삶을 저어가고 있는 소박한 사람들의 소담한 집 몇 채가 귓속말을 걸어오듯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집에서 뛰어나와 눈 깜짝 할 사이에 옆집으로 숨어버린다. 이 모든 정겨운 풍경이 순례자들을 멈춰 세우고 카메라를 꺼내들게 만든다. 그저 셔터를 누름과 동시에 작품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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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계속 이어진다. 세상의 모든 길은 서로 이어지며 끊어짐 없이 흐른다. 마치 이 세상 모든 것도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하나의 길이 모든 사람을 수용하는가 하면 또 때로는 무수히 많은 길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열어 주기도 한다. 길과 길의 중첩, 인드라 망과도 같은 길과 길의 조화가 언덕 아래 삶과도 같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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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옆 바위나 초원 위에서 또 다른 길과 같은 사람이 앉아 길을 주시하며 휴식을 즐기고 있다. 길은 사람을 걷게 하고 또 쉬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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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그 길 위로 야크의 행렬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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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마을이 나타나고 그 끊어짐은 또 다른 삶의 터전 속에서 확장되다가 다시 하나로 모여지곤 한다.

 

신들의 마을을 지나 계절을 관통하다

이 투명한 길이 마체르모(Machhermo, 4470m), 이름처럼 그림 같은 마을에서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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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체르모! 두고 두고 쿰부 순례를 떠올리면 내 안에서 불쑥 마체르모의 평온한 마을이 스르륵 마음의 문을 열고 튀어나오게 될 것만 같다. 우뚝 선 설산 아래 검푸른 높다란 언덕이 있고 그 아래 옴팡진 곳으로 마체르모, 선연한 작은 마을이 계곡을 끼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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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돌담과 돌담 사이로 몇몇 롯지가 들어 서 있고 그 돌담 안에는 때때로 야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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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양쪽에서 숨숨한 푸른 초원의 언덕이 거친 바람을 막아주고 명주실처럼 쏟아져 내리는 다사로운 햇살과 그 볕을 받아 또랑또랑 빛나는 계곡 작은 물줄기가 허허로이 흘러간다. 그야말로 이 교박하고 황량한 고지 위에 생명이 살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쿰부의 여신은 마체르모에 선사했다.

이 아름다운 마을 마체르모가 있어서 고쿄 순례 길은 더욱 빛이 난다. 언덕을 내려가 마체르모의 품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고고한 집들과 고풍스런 돌담과 사람과 야크와 구름과 햇살과 푸른 하늘, 푸른 언덕, 오랜 신들의 정원에 맑은 물이 흐른다. 바람도 잠시 쉬어가는 이 마을에서 마음을 쉬고 발길도 잠시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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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사이를 지나 마을을 가로질러 이 마을의 근원인 맑고 깊은 계곡 앞에서 숨을 고른다. 졸졸졸 졸졸졸 쉼 없이 흐르는 물이 있어 마체르모가 더욱 풍요롭다. 그 물 위로 난 작은 다리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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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건너편 언덕을 쉬며 가며 오른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체르모는 더욱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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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오르면 룽다와 타르초가 마체르모의 일주문처럼 거센 바람의 연주에 맞춰 푸두둥거리며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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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길 위를 걷는다. 사람도 걷고 야크도 걷는다. 바람도 구름도 풀꽃들도 함께 이 길 위를 걷는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 유명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칼라파타르를 마다하고 이 먼 곳까지 와서 고쿄 트레킹만을 하고 돌아가는지 이 길이 모든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아름답다는 말을 쓸 수가 없다. 그 말을 써 버리고 나면 저마다의 안에서 자기 식대로 영근 아름답다는 제한된 말의 의미에 갇히게 되지 않겠나. 아, 이 아름다운 곳을 두고 아름답다고 쓸 수 없다니, 언어의 한계에 봉착하는 순간, 비로소 언어를 넘어 선 낱말 너머의 침묵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순간이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의 쉼이 있다. 걷다 걷다 걷다 보면 저절로 초원 위에, 흙 위에, 그리고 바위 위에 앉게 된다. 앉아서 비로소 허리 한 번 펴고, 풍경 한 번 바라보고, 하늘 한 번 보고, 그러면서 이 산 위에, 길 위에 서서 걷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문득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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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길을 저어 당도하는 마을이 ‘루자(Luza, 4360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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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자 또한 마체르모의 그것과 흡사한 구조와 아름다움을 온전히 부여받은 또 하나의 선물이다. 마체르모보다는 다소 작지만 오히려 그 담소한 풍경이 더없이 충만한 향기를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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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자의 여울진 개울을 건너 뒤를 돌아보니 이 마을의 진한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얕은 다리 위로 사람들의 걸음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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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을 걷다 보니 올라올 때는 지도상의 거리감이 꽤나 멀게 느껴지더니 내려갈 때는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지도의 좌표가 금방 금방 지나간다. 사실 고쿄에서 루자까지의 거리만 해도 오르막에 있어서는 하루도 더 가야 할 거리겠지만 아직 점심때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 점심은 돌레에서 먹어도 충분하다고 지텐이 말했을 때 설마 했었는데 이 정도의 속도를 보면 그러고도 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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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고쿄든, 칼라파타르든 내려갈 때는 하루만 잡아도 된다고 했던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길은 산의 7부 능선 정도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이 길이 이어지는 반대편 산의 비슷한 고도에 같은 속도로 길게 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절벽 처럼 깊고 가파른 계곡 저 아래로 머얼리 맑은 물소리가 흐르고 있다. 건너편 산중 오솔길 사이사이로 조금만 평지가 나타나더라도 어김없이 그 위태로운 자리를 보금자리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 놓은 인간의 삶에의 의지가 눈물겨워지는 순간이다. 제법 큰 마을도 몇몇 곳 눈에 띈다. 지도를 보니 크고 작은 그 모든 마을들이 다 이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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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자를 마주하고 서 있는 마을이 토레(Thore, 4300m)이고, 그 옆으로 조금 더 가면 나오는 마을이 타레(Thare, 4390m), 그리고 가는 길 방향으로 보일 듯 말 듯한 마을이 코하나르(Kohanar, 4048m)다. 두 길이 두드코시(Dhudh Kosi) 계곡 강줄기를 사이로 사이좋게 마주보며 거닐고 있다. 몇몇 아름다운 마을과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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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이 아슬아슬하고 황량한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인지 인간의 생명력이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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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품과 배려는 도대체 얼마나 드넓고도 풍유한 것인가. 그곳이 어디든 자연이 살아있는 곳에는 언제나 인간의 삶이 함께 한다. 언뜻 보기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척박해 보일지라도 자연은 아무 조건 없이 언제나 우리에게 무한정 베푼다. 인간의 욕심만 기형적으로 키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자연 속에 깃드는 것을 자연은 언제나 반긴다.

사실 땅뙈기 어느 정도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자연이 알아서 책임져 줄 것이다. 단 그것은 최소한의 필요로 만족할 수 있는 무집착과 무욕의 청빈한 마음이 바탕이 될 때의 얘기다. 지금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친 듯이 벌이고 있는 이 욕심추구와 만족을 모르는 공룡 같은 기형구조를 타파하지 않는 이상 지구의 미래는 암담하기 그지없다. 이제 더 이상 자연이 품어줄 수 없을 만큼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지 모른다. 인류가 만족하지 않는 이상, 너도나도 더 큰 성공과 부와 욕심을 버리지 않는 이상, 이 아름다운 지구별도 별다른 대안이 없다. 지구 전체 차원에서 거대한 만족과 청빈과 무욕의 정신이 물결처럼 파도치지 않는 이상 이 죽어가는 지구를 살릴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오히려 지금의 현실은 지구 전체 차원의 보다 효과적인 파괴와 개발이 계속되고 있으며, 인류 전체 차원의 집착과 욕심과 만족을 모르는 퇴락한 정신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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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라바르마(Lhabarma, 4330m) 작은 마을을 지나 돌레(Dole, 4200m)로 이어진다. 라바르마를 지날 때 발아래 사뿐사뿐 반짝이며 뛰어노는 나비 두 마리를 보았다. 잘못 보았나 싶어 다시 자세히 보니 아예 이 녀석들이 ‘우리 나비 맞아. 진짜야. 와서 자세히 보렴’ 하듯이 길 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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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전 잠깐 사이에 고도를 많이 낮춘 것이다. 날씨도 많이 포근함이 느껴진다. 나비, 나비라니! 오전 시간 잠깐 사이에 5,000고지 그 겨울 같던 곳에서 나비가 살 수 있는 이 따스한 봄으로 내려 온 것이다.

역시나 돌레에 들어서면서부터 풍경은 180도 바뀌기 시작한다. 수목한계선을 뚫고 내려온 것이다!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솟아올랐고 꽃들의 웃음이 만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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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벌과 숲 속의 구성원인 모든 작은 생명들이 숲과 함께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그래, 그래, 그러고 보니 작지만 내 안에서도 조금 더 편안해진 무언가를 감지한다. 숨쉬기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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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레에 도착한 시간이 11시가 조금 넘어서 내친김에 포르체 탱가(Phortse tenga, 3680m)까지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돌레 주위의 숲은 흡사 한국의 가을을 연상케 할 만큼 낙엽들이 오색으로 물들어 떨어지고 있다. 물론 그 물듦이 단풍이라고까지 명명할 수 없을 만큼 소박하긴 해도 겨울에서 순간 가을로 이동을 해 가는 느낌은 선명하다. 폭포수도 가을처럼 시원스레 쏟아져 내리고, 온갖 꽃들도 생기를 되찾아 꽃무리를 이루며 재잘거린다. 푸르른 숲이 우거진 나무 그늘이 한낮의 땀을 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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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과의 연대감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숲길, 나무숲의 터널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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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모든 생명이 거리낌 없이 생명력을 발산하고, 온갖 존재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것이다. 어떻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높은 고도를 걸을 때의 그 황량한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존재감이랄까, 조화로운 생명의 에너지가 비로소 춤을 추고 있음을 느낀다. 그저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꽃과 나비와 숲을 보면서 일종의 동질감, 연대감 같은 것을 느끼며 ‘그래 여기가 너와 내가, 우리가 살기 알맞은 곳이지’ 싶은 반가운 하나 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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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도 너희들처럼 너희들도 나처럼 같은 삶의 터전을 공유하는 조화로운 한 가족, 한 생명이로구나. 너희가 저 위의 고도로는 올라갈 수 없듯이 나 또한 그곳에서는 숨쉬기 힘든 버거움을 느꼈단다. 이제 이렇게 다시금 어머니의 품, 고향으로 돌아오니 나의 오랜 벗들이 이렇게 나를 반겨주는구나.’

역시 생명의 뿌리는 서로 다르지 않다. 내가 살기 힘들면 자연의 모든 생명도 살기 힘들어지고, 내가 살기 좋은 터전에 모든 생명도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어느덧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미미하게나마 내 몸도 내가 살아가기 최적의 조건에 딱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과 함께 꽃도 초록도 나비도 숲도 만나게 되니, 우리 모두가 진정 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한 가족이었고, 둘이 아니었다는 깊은 일체감에 사로잡힌다. 아, 이 생명들과 내 생명이 하나였구나,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한생명이로구나. 홀로 여행을 떠나왔다는 고독증에서 벗어나, 이 온누리 생명의 벗과 함께 하고 있다는 대자연과의 친근감을 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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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 지구에 어느 한 작고 여린 생명이 살아갈 수 없는 조건으로 바뀌어 버리고 나면, 그 종이 소멸하면서 사실상 우리 인간 존재의 일부도 함께 스러져가는 것이다. 종의 소멸은 곧 있을 인간의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를 우리는 공유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라는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사라져가는 생물 종이 하루에도 140여 종, 일 년에는 최소한 5만 종의 생물종이 멸종되고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50년 이내에 지구상 생물종의 1/4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수많은 생물들의 서식처인 열대우림과 숲이 1분에 29ha, 즉 축구 경기장 40개에 달하는 면적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에는 참사람 부족이 더 이상 오염되어가는 지구별에서 살 수가 없어 부족 스스로가 더 이상 후손을 만들어내지 않음으로써 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생생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세계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환경오염과 생물종의 멸종, 지구온난화의 가속 등으로 인해 남성의 정자 수가 급감하고 불임이 늘어 인간 자체능력만으로 임신을 계속할 수 없어 이런 상태로 2017년까지 가면 결국 인간도 멸종의 길을 걷게 됨을 강력하게 경고하기도 했다. 지구라는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과 나아가 생명 있고 없는 모든 존재들 모두의 공통의 거처인 이 별을 더 이상 인간이라는 하나의 무탄트, 하나의 별스런 희귀종이 자신들만 편히 살자고 다른 생명과 존재와 지구 전체를 무참히 오염시키다 결국 폭발시켜 버리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기를 저들 순수한 생명은 오늘도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숲이 뿜어내는 직접적인 공기를 마시며 걸으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또한 두 눈으로, 두 귀로, 코로, 몸으로 이 숲의 빛과 소리와 냄새와 감촉을 고스란히 느끼며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가 분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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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 도시, 쿰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다

예상보다 일찍 포르체 탱가까지 도착해 느긋하게 점심 식사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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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체 탱가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이제부터 작은 산 하나를 넘어야 하는 하산 길의 유일한 오르막을 만난다. 아, 그런데 역시나 신기하다고 느낄 정도로 오르막길이 숨 가쁘지 않고 그리 힘들지 않다. 공기의 존재가 이렇게 고마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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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넘고 조금 더 내려가니 올라갈 때 만났던 익숙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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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내려갔더니 올라가며 보았던 바로 그 삼거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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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남체바자 쪽이 아닌 쿰중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오후 3시 즈음에 쿰중 마을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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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중은 생각보다 더 큰 도시다. 남체바자와 거의 맞먹을 정도의 큰 규모의 시내가 펼쳐지는 풍경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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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텐이 추천해 주는 롯지를 잡아 짐을 풀어 놓은 뒤 잠시 창밖으로 펼쳐진 쿰중의 선연한 풍경을 바라본다.

잠시 쉬었다가 쿰중 마을을 한 바퀴 산책한다. 산책하다 보니 베이커리 빵집을 만난다! 빵집이라니 참 오랜만이다. 들어가서 빵을 하나 시키고 음료를 하나 주문하여 꿀맛 같은 모처럼의 군것질을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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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호강을 하며 빵집에 앉아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자니 비로소 히말라야의 일정이 끝나고 있구나 하는 녹록한 여운이 밀려온다. 그간의 일정을 회상하다 가물가물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다 깜짝 놀라 일어선다. 아주 짧은 시간의 졸음이 깊은 단잠처럼이나 달콤한 휴식을 가져왔는가! 그 짧은 시간 동안의 졸음 속에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설산을 걷는 꿈을 꾸다가 이제 막 깬 것처럼 그간의 걷기가 아련하게 느껴진다. 진짜 꿈을 꾼 건 아닐까! 2주 간 설산에서 보낸 날들이 꿈처럼 거짓말인 것처럼 기억 속에서 하늘거리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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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설산 뒤로 넘어가고 있다. 쿰중이 어둠에 잠긴다. 롯지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났더니 몸도 마음도 완전히 긴장이 풀린 것인지, 이제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피로감이 몰려온다. 이럴 때 따뜻한 물에 목욕이나 하고 푹 자야겠다 싶어 모처럼 돈을 주고 따뜻한 물을 사서 온몸을 덥힌다. 며칠만의 목욕인가.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지. 목욕을 하고 나서 여느 때보다 일찍 단잠에 빠진다.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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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포카라-나야풀-김체)

포카라 사랑콧의 꿈같은 하룻밤

4년 전, 포카라(Pokhara) 페와호수(Phewa Lake)에 나른해진 심신을 띄워놓고 저 멀리 설산을 바라보며 도반들과 나누던 안나푸르나의 품속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잊혀 지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욱 또렷해 져만 가고 있었다.

포카라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사랑콧(Sarangkot, 1592m)에 올라 거센 오후의 빗줄기를 만났을 때, 또 그 빗속을 뚫고 새벽 첫 안나푸르나 일출의 장엄한 연주를 들었을 때, 아마 그 때부터 나의 그리움은 설산의 은빛 속살을 타고 내 뼛속 깊숙이까지 스며들었을 터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Annapurna Base Camp, 4130m) 트레킹이나 라운딩을 마치고 산에서 막 내려온 사람들 모습 속에서 나는 마치 신을 본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얼굴은 새까맣게 타고 그을렸으며 며칠은 굶었을법한 퀭한 눈과 낯빛으로 다가 온 트레커들의 산 이야기는 내 안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희말라야와의 오랜 인연을 홀연히 끄집어내어 주었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이미 설산의 길 위를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이고 계속해서 생각이 나더니 사랑콧과 나갈콧(Nagarkot)에서 보았던 설산 속에 내가 서 있는 꿈을 종종 꾸곤 했다.

네팔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나는 그냥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다시 출가하는 심정으로 저 희말라야의 품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 가고만 싶었다. 묵직한 배낭 하나 짊어지고, 깎지 않은 수염에 초췌해 보이는 얼굴로 그러나 눈빛에는 아이 같은 천연의 생경함을 담아 초롱초롱한 호기심을 가지고 튼튼한 두 발에 의지하여 저 산 속을 홀로 누비며 걷고 있는 상상의 나래를 단지 마음속으로만 꽃피우며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히말라야로 갈 것이냐 탈영승이 될 것이냐

출가 까지 하며 훌쩍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걸릴 것이 있어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가고 싶은 곳에 못 가겠느냐 싶겠지만 출가를 했다고 결코 모든 것에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돌아갈 곳, 아니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 있었다.

나는 군인이었다!

스님이면서 그러나 동시에 군인의 길을 걷고 있는 특별한 나의 신분과 사정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스님들도 군대가요?”

그럼 가죠! 스님도 목사님도 신부님도 다 군대를 간다. 군종장교(軍宗將校), 군대에서 자신의 군생활을 하며 장병들에게 종교생활을 지도하고 인성함양을 심어주는 수행자이자 장교인 이중적 신분의 특별한 군인들이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보다도 군종장교에게는 장교가 먼저냐 성직이 먼저냐, 군인이 먼저냐 종교인이 먼저냐 하는 해묵은 우스개의 농이 있다.

나는 마음이 난다고 그저 쉽게 일정을 변경하여 희말라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신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의 공식적인 신분은 다만 잠시 휴가를 나온 군인이었다! 스님이고 뭐고 나의 공식적 신분은 잠시 휴가를 나온 군인, 만약 휴가 복귀를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 사실을 터다. 그렇다. 탈영! 아마도 세계 최초의 탈영병이 아니라 탈영승이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희말라야에 대한 나의 상사병을 뒤로 하고 한국 땅을 밟았다. 누군가가 말했던가.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라고.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일 진데, 여행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병 중에도 큰 병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래도록 잊혀 지지가 않는다.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 하고도 한 해 두 해가 지나가건만 희말라야에 대한 일방적인 나의 사랑은 일상 속에 묻혀 희미해져만 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또렷해져만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나의 현재의 조건에 있어 희말라야는 꿈일 뿐이다.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를 내 마음처럼 자유롭게 걸으려면 적어도 한두 달 정도는 필요하건만 어떤 군대가 한 달 이상 휴가를 내준단 말인가!

이 즈음 되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희말라야를 포기하던가 아니면 군인이기를 포기하던가. 시간이 흐르면 희말라야가 포기가 되겠지 하며 지낸 세월이 어언 3년, 그러나 이 그리움은 3년째가 되면서 더욱 커져 급기야는 전역을 신청하고서라도 가야겠다는 마음에까지 이르렀다.

이게 무슨 열병이란 말인가. 이정도면 이게 집착인가! 그래, 집착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희말라야와 나와의 오랜 인연이 무르익었다는, 드디어 만날 때가 되어간다는 내면 깊은 곳에서의 어떤 소식, 혹은 어떤 내밀한 메시지였을지 모른다. 물론 그러한 나의 그리움에는 오래 전부터 꼭 다녀와야 겠다고 생각했던 인도의 부처님 성지와 ‘오래된 미래’를 읽고 이 또한 언젠가 꼭 한번 가야지 했던 라다크에 대한 그리움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3개월 정도만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 모든 곳으로의 꿈같은 순례가 가능할 것이다. 이런 그리움이 충만하게 채워질 것이다. 물론 그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꿈꿀 수 없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거짓말 같은 히말라야와의 인연

‘마음에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 때 나의 간절함과 그리움과 서원 또한 이루어진 것일까! 이 우주를 뒤덮고 있는 우뚝 선 세계의 지붕 희말라야가 나의 그리움에 탄복이라도 한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이번 생에 나와 이 산과의 인연이 영겁의 오랜 기다림으로부터 이미 계획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저 설산의 여신 초모랑마가 꿈처럼 나와의 만남을 허락해 준 것이다.

작년 한 해 안나푸르나와 희말라야에 대한 그리움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크고 간절했으며 사무쳤고 묵직한 것이었다. 되돌아 보건데 그 한 해 나는 운명적인 히말라야와의 조우를 근원적인 차원에서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토록 한 해 내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네팔의 설산과 고타마 붓다의 고향 인도의 향기를 그토록 진하게 맡을 수 있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 일은 참으로 절묘하다. 그야말로 인연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왜 나는 그렇게도 작년 한 해 희말라야와 라다크와 인도에 대한 열병과도 같은 뜨거운 무언가를 깊이 깊이 품게 되었을까. 왜 그리도 가지도 못할 그 곳을 찾아 책, 인터넷, 블로그, 사진 등을 뒤져가며 그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안에 머물러 마음만은 그 허한 산길을 걷고 있어야 했을까.

왜 그토록 자주 꿈속에서 설산 위를 훨훨 날았으며, 붓다가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의 대탑 아래에 앉아 좌선에 들었던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 일이 일어나기 위한 내 마음 속에서의 메시지이자 힌트가 아니고 무엇이었으랴. 이제 떠날 때가 되었으니 네 안에서 준비를 하라는 우주의 메시지가 아니고 무엇이었으랴.

군에는 매년 기독교 군종목사님 중 한 분씩을 선발하여 약 3개월 간의 성지순례를 보내주는 자비(自費) 해외연수 프로그램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님들이나 신부님들에 비해 목사님들이 훨씬 많고 군종장교의 상당수를 차지하다 보니 아직까지 스님, 신부님들에 대한 혜택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해 갑자기 군 종교의 형평성 차원에서 스님들에게도 인도, 동남아 등 불교지역으로의 성지순례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문호가 개방 된 것이다! 갑자기 바로 그 해에! 게다가 혜택을 볼 수 있는 첫 해다 보니 아직 홍보가 덜 되어 있어서, 군의 선배 스님들께서 그런 제도가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가 보다. 최종 선발 날짜까지 나를 제외한 단 한 명도 신청 접수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나를 위한 제도가 생겨난 셈이 되었다.

 

당신을 위한 우주의 놀라운 계획

생각해보라.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나는 인도, 네팔, 히말라야, 라다크 등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그곳을 다 다니려면 적어도 2~3달 정도는 소요가 된다.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진묘하고도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내가 원하는 곳에 모두 다니려면 2~3개월이 필요했고, 나에게 주어진 공문상 출장 기간은 12주였다. 군승으로써는 3개월을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계기 자체가 전혀 없었는데, 갑작스레 기회가 생겨났다. 선배 스님들이 너도 나도 지원했을텐데, 마침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고, 평소 공문이나 인트라넷의 거의 보지도 않던 내가 그날따라 다른 일이 생겨 사무실에 갔다가 시간이 남는 바람에 잠깐 공문을 보았고 그 공문을 본 날이 마감 전날이었다. 또 보통은 3개월이나 부대를 비우기 어려울뿐더러 지휘관이 그렇게 허락하기도 힘들 것인데, 마침 지휘관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었고 추천서를 써 주셨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의 완벽하게 짜여 진 대본처럼 느껴진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무리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하여 만들어낸들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것들은, 이와 같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짜 맞춘 듯 그것이 일어날 수 있도록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내 주는 것이다. 이런 것을 우주법계의 조화요, 인연의 신묘한 조화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의 신비이며 매 순간이 기적과도 같다. 이와 같은 일만 기적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기도 하다.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이야말로 참된 기적이다.

 

삶이 보내주는 힌트 알아차리기

우리 삶은 이처럼 우리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조화와 신비들로 뒤덮여 있다. 우리의 삶에서 가만히 되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깜짝 놀라게 되는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때 그 대학 캠퍼스에서 수업 시간이 늦어 빨리 뛰어가지만 않았더라도 그 여인과 부딪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랬었다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아내와 자녀들은 없었을지 모른다! 또한 그 때 그 회사에서 사고를 치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사장 자리도 없었을지 모르며, 그 때 배낭여행 중 우연히 그 나라로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의 해외유학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심지어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그 날 밤 너무 정숙했던 나머지 사고를 치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내가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우연인 것 같은 필연과 인연들이 거짓말처럼 얼키설키한 그물코처럼 우리의 삶을 조화롭고 균형 잡히게 해 주고 있다. 모든 우연은 우연을 가장한 소중한 인연이다.

아무리 우연이라고 생각할지라도, 그 인연을 열매 맺게 해 주기 위해 이 우주 전체가 발 벗고 나서서 그 일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른 봄 매화 한 송이가 꽃을 피우는 데에도 전 우주의 장대한 계획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 우주적인 계획은 언제나 우리에게 힌트를 보내주고 있다. 삶의 사소한 일상조차도 우주적인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그 해 나도 모르게 인터넷을 켜면 인도와 히말라야를 찾고, 가슴 속에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룽다가 휘날리는 설산의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피어나며, 꿈속에서조차 히말라야 길 위를 걸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나를 준비시키기 위한 우주법계의 메시지요 힌트였던 것이다. 그 한 해 동안 직관적인 영감들이 왜 그토록 나를 인도로 향하게 했고, 히말라야를 향하게 했는지 그 당시는 분명히 느끼지 못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것들이 투명한 의미로써 다가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가만히 지켜보고, 직관적인 어떤 느낌의 흐름조차도 차분히 주시해 보라. 삶의 모든 부분들을 놓치지 말고 관찰 해 보라. 애써 해석하지 말되,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지 말고 지켜본다면, 당신 삶의 수많은 힌트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은 분명한 메시지로 다가와 직접적으로 당신을 돕게 될 수도 있다.

우주는 이와 같은, 혹은 더 깊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수한 방법으로 우리를 돕고 있다. 그 자비로운 도움의 방편들은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고도 상징적이다. 마음이 투명하여 예술과 감성적인, 그리고 직관적인 의식에 깨어있는 사람일수록 그 상징과 힌트들을 머릿속의 해석 없이도 자연스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안나푸르나 앞에 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희고 고운 영봉이 올려다 보이는 네팔 포카라(Pokhara, 620m)의 한 식당에 앉아 폐와호수와 마차푸차레를 앞뒤로 바라보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8월말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꿈에 그리던 라다크와 성스러운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고 날도 좋은 10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순례를 위해 잠시 포카라에서 목욕재개하고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아! 다시 생각해 봐도 지금 내가 이렇게 네팔 포카라에 앉아 하얀 설산을 올려다 보며, 폐와호수를 내려다보며 고요한 오후를 보낸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행복감이 호수의 표면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 주는 햇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한없는 풍요, 평화, 혹은 행복! 그 무슨 말로 지금의 이 감격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드디어 오늘, 이렇게 감격스러운 오랜 그리움의 무게로 안나푸르나를 내딛는다. 포카라에서 안나푸르나의 입구격인 나야풀(Nayapul, 1070m)까지는 차로 약 1시간 가량이 걸린다. 나야풀까지 가는 길목 곳곳에는 다랭이 논들이 초록과 노오란 진한 빛을 뿜어내며 그림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트래커들이 입산하기에는 늦은 시간인 오후 1시에나 되어 나야풀에 도착. 일반적으로 ABC 트레킹의 첫날 숙박 예정지인 간드룽(Ghandrung, 1940m)까지 가려면 한참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간드룽이 문제가 아니다. 어디서든 잘 곳이 있으면 자면 되고, 걸을 수 있으면 걸으면 되는 것, 산행의 즐거움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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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 선뜻 드러내 놓고 말하기 어려운,

누구나 있음직한 내밀한 고민이 하나 있다.

정직하고 투명한 분들께서

때때로 자신의 ‘양심’과 ‘욕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자신의 내면적 현실에 대해

토로하는 소리를 듣곤 한다.


공금을 사용할 때,

때때로 애매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공금으로 쓸 수도 있고,

사비로 쓸 수도 있는 경우에

마음속에서 계속 갈등이 일어난다고 한다.


깊은 양심에서는

공금이 아닌 사비로 지출하라고 말하지만,

표면적인 욕심과 아상은

끊임없이 ‘괜찮아, 공금을 써도 되.’

‘그 정도는 괜찮을거야’

‘설사 누가 안다 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잖아’

라고 말하며 자신의 주머니 돈을 쓰지 말고

공금을 쓰라고 속삭여 댄다.


이런 정도라면 그래도 좋다.

때때로 좀 더 집요하게 아상과 아집은 속삭인다.

‘그 정도 공금은 사적으로 써도 괜찮아’,

‘공적인 것들이지만 이 정도는 누가 알겠어 그냥 사적으로 써 버려’


공과 사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

혹은 분명한 공적인 것이지만 사적으로 쓰고자 하는

미묘한 욕심이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는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공직에 있거나,

공적인 직위나 소임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갈등은 더욱 많지 않을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도 우리 안에는 참 고맙게도 ‘양심’이라는

내면의 진리의 소리, 정직한 소리가 늘 울리고 있다.


언제나 비추어 보라.

이것이 ‘양심’에 위배되는 것인가,

아니면 양심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것인가.


세상 사람들이 다 모른다고 할지라도

자기 안의 내면의 양심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이 우주법계가 이미 다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안 본다고,

혹은 아무도 알지 못 할 거라고,

나에게 이익이 될 듯하여,

자기 욕심 때문에,

혹은 알더라도 교묘히 빠져나갈 틈을 기어이 만들면서까지도

양심을 거스르고 싶은 충동과 욕구는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것이 바로 표면의식,

즉 우리의 아상이며 무지이고 탐심의 실체다.

아상, 즉 에고는

‘나’를 아끼고 보호하고 늘리려는 끊임없고도 집요한 마음이다.


어떻게든 ‘나’에게 이익되는 쪽으로 온갖 머리를 굴리면서,

양심이야 어떻든,

교묘히 ‘나’라는 아상을 늘리려고 속삭여 대는 것이다.


지혜로운 이는

그런 아상의 교묘한 속삭임조차 없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인 이상, 완전히 깨닫지 못한 이상

언제가지고 아상과 에고는 우리를 끝까지 쫓아가 괴롭힐 것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이는 아상이 거기 있음을 분명히 알고

아상이 속삭이는 집요한 아집과 욕망어린 소리에

굴복하지 않고

그 이면에서 진실로써 속삭이는 양심의 소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닐까.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는 삶을 살면

우리는 우주법계 앞에, 진실 앞에, 부처님 앞에, 신 앞에

당당하게 자유롭게 두려움 없이 근심 걱정 없이 설 수 있다.

그런 사람의 내면은 균형잡혀 있고, 두려움이 없으며,

죄의식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투명하고 고요하며 맑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게라도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된 뒤에는

마음 속에 미묘한 두려움과 죄의식들, 이를테면

‘잘못되면 어쩌지’, ‘과보를 받지 않을까’, ‘심판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 속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런 내면이야말로 두려움과 죄의식이라는

가장 어리석은 내면의 부조화와 어두움을 키우게 된다.


양심이야말로 우리 내면의 진리이고,

불성의 소리이며, 신의 음성이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될 때

그것은 흡사 우주 전체를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처님과 하느님, 진리계를 어떻게 속일 수 있겠는가.


설마 당신이라는 존재가

이 우주 전체를 완벽하게 속이거나,

자신의 행위를 철저하게 숨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우주 전체와 완전히 연결되어 있으며,

부처와 신과 둘이 아닌 하나이기에,

내 안에서 어긋남이 있는 순간

그것은 우주 전체와의 관계가 어긋남을 뜻한다.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아무리 열심히 치열한 수행정진을 할지라도

‘깨달아야지’하는 마지막 ‘욕심’, ‘집착’까지 다 떨어내기 전에는

결정코 밝은 빛은 깃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을 살펴봤을 때,

물론 명확하게 둘로 나눌수는 없겠지만,

아름다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지혜로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훌륭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기준은

탐진치 삼독에 있고,

그 중에도 첫 번째 덕목인 ‘탐욕’에 있다고 보여 진다.


아무리 훌륭하고 지혜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 내면이 욕심과 집착으로 가득해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들이 계속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아직 먼 것이 아닐까.


세상 사람들을 살펴보건데,

아무리 지혜로운 척 해도, 아무리 수행자(성직자)인 척 해도,

아무리 자신을 치장하며 ‘척’하는 듯 보일지라도

그의 내면이 욕심과 집착의 행위를 일삼으며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는 자라면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지혜로운 사람인지를 검증해 보려거든,

자기 안의 욕심과 집착을 살펴보라.

자기 안의 양심을 들여다보라.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이겠지만,

사실 이 요소야말로

우리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혜로운 삶의 덕목이 아닌가 한다.


자기 안의 양심이라는 부처를, 신의 소리를

늘 안으로 비추어 보는 삶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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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거사님의 고민은
진급에 대한 불안에 있고,
한 보살님의 고민은
사업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있다.

거사님은 토끼 같은 자식들 공부라도 다 시키려면
어떻게든 끝가지 버티면서 진급에 목메지 않을 수가 없다.
또 보살님은 벌여 놓은 사업이 왜 신통치 않은지
날이 갈수록 고민만 쌓인다.

그런데 어느 날 설법을 듣고,
방하착에 대한, 무집착에 대한,
그리고 공의 명상에 대한 가르침 대목에서
큰 깨달음이 있었다.

조금 내려 놓으니 답이 없었던 것이,
완전히 내려 놓아 보니
시원한 답이 나왔던 것이다.

자식들 공부 시키고,
마누라 월급도 갖다 줘야 하고,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진급도 해야 하고,
특히, 자식 공부 끝날 때 까지는 포기할 수 없다고
끝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진급, 직장에 대해
완전히 내려 놓아 보았더니,
그래도 죽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진급 안 하면 우리 가족 다 죽는 줄만 알았고,
해결책이 없을 줄만 알았고,
진급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것만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 왔는데,
사실,
정녕,
결정코,
그런 것인가?
결코 진급 없인 안 되는가?
하고 냉정하게 물어 보았더니,
그렇지는 않더라고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진급 까짓거 안 되면
어떻게든 죽으라는 법이야 있겠느냐 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는 마음으로
내려 놓아 보았더니,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같던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기가 한결 수월해지더라는 것이다.

보살님도 마찬가지다.
사업 포기는 있을 수 없다고,
내가 어떻게 일구어 온 것인데,
어떻게든 한 번 빛을 보고야 말 것이라고,
끝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사업인데,
‘이걸 놓으라고?’
‘절대 그럴 수 없어’
‘스님이 뭘 안다고 놓으라는거야? 남 사정도 모르면서’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된단 말이야’
하고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사업,
그것을 까짓거 마음으로인데 어때 하고 받아들이고 났더니,
까짓거 놓아볼 용기가 생기더란다.

그래 사업,
내가 젊었을 때부터 일구어 왔고,
어렵게 어렵게 이렇게까지 끌고 왔는데,
한번 크게 성공도 못 하고,
본전도 못 찾고,
남들에게 성공했단 소리도 못 듣고,
여기서 끝내라고?
절대 할 수 없을 것만 같더니,
한 번 놓아 보자 한 생각에
내려 놓고도 살 수는 있을 것 같더란다.

억울하지만,
그리고 아깝지만,
까짓거 내려 놓을 수도 있겠더란다.
그렇게 내려 놓고 났더니,
그제서야 속이 후련해 지더란다.

이제까지 그 사업으로 인해 속끓이고,
골치 썩이고, 괴로워하고,
자식들과 놀아주지도 못하고, 신경도 못 써주고,
몸도 못 돌보고, 못 먹는 술도 먹어야 하고,
그 모든 것들이
까짓거 한 번 놓겠다는 마음 내 보았더니,
못 놓을 것도 없고,
오히려 속이 후련해지더라고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마음에서 짐을 내려 놓고 나면,
실제 포기한 것은 아니더라도
마음은 훨씬 편안해 지고,
자유로워지고,
얽매임이 훨씬 줄어들게 됨을 경험한다.

이것 아니면 안 되겠다던 생각들이 놓여지면서,
훨씬 여유가 생기고,
잘 안 되더라도 일희일비 하지 않게 되고,
조금 잘 되더라도 쉬 들뜨지 않게 되면서,
조금 더 크게
자신의 사업에 대해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집착하게 되면,
그 집착이라는 좁은 소견에 갇혀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넓은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게 되는
지혜로운 눈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가 될 지는 모를지라도,
내려 놓아야 할 때가 온다면
미련 없이 ‘그래 내려 놓고 말지’라는 큰 한 생각을 내고 나면
오히려 그 일에 대한 지혜와 통찰과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이게 바로
내려 놓아야 더 크게 잡힌다는 도리다.
물론 미묘하게도,
내려 놓으면 더 큰 것을 잡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과 계산은
또 다른 어리석음이며,
더 큰 것을 붙잡겠다는 무명일 뿐이다.

완전히 내려 놓아 보면,
상상할 수 없는 큰 공덕이 있다.

자유로움이 있고,
지혜가 있고,
여유가 생겨나고,
통찰과 직관이 깨어나며,
나만이 아닌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자비로움도 생겨나고,
매 순간의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힘 또한 생기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크게 한 번 내려 놓는,
그래서 본래 아무 것도 없었던 ‘무(無)’, ‘공(空)’
‘제로(0)’로 돌아가 보는 명상이다.

진짜로 사업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진급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삶을 포기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집착을 내려 놓음으로 인해,
붙잡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참된 무소유를 통해,
공의 실천을 통해
더 큰 지혜와 사랑과 통찰이 열리는
귀하디 귀한 명상인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내려 놓아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놓으려면 어떻게 내려 놓아야 하는지를 모른다.

과연 나는 무엇을 잡고 있고,
또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 내려놓아야 할까?
그리고 집착을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 ‘공(空)의 명상’이 있다.

누구나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나씩 둘씩 붙잡고 집착하며
집착과 소유의 굴레에 사로잡힌 줄도 모른 채
무거운 집착의 속박에 갇히곤 한다.

처음엔 작게 시작되었던 집착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다 보면
그것이 어느 새 늘어난 줄도 모르고
집착의 무게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시절에는
백 원짜리, 오백 원 짜리 동전 하나만 있어도 행복하다가,
대학생 때 쯤에는 몇 만원 쯤은 있어야 행복해지고,
직장생활 초년생 때는 월급 100만원에도 행복해지지만,
점차 월급도 연봉도 많아지면서
연봉 5,000만원, 7,000만원, 1억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여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욕심과
만족할 줄 모르는 집착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때때로 ‘공성의 명상’을 통해
내가 지금 어느 정도의 집착의 굴레에 갇혀 있는지,
내가 집착하고 있는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물론 소유하지도 말라는 말이 아니다.
소유하되, 거기에 소유 당하고 있는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늘 깨어있는 정신으로 알아차리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성의 명상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0’으로, 즉 ‘무(無)’, 아무 것도 없음의
공(空)으로 돌아가 보는 명상이다.

우리가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
그리고 생을 마치고 떠나가야 할 때,
우리가 본래 나왔던 바로 그 자리가 바로 공의 자리다.

이 나온 자리를 아주 생소하게, 낯설게,
‘나’라는 모든 수식과 정의와 규정들을 완전히 내려 놓고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무아(無我)의 나로 돌아가 보는 것이다.

우리가 나온 자리는 어디인가?
처음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어떤 존재로 왔는가?

아무 것도 없는 존재로 왔다.
소유한 바도 없었고, 집착한 것도 없었으며,
이루어야 할 꿈도 없었고, 커서 무엇이 되리라는 목표도 없었다.

동전 한 닢도 없었고,
돈도, 차도, 집도, 집착할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저 알몸 하나 달랑 가지고 태어나
매 순간순간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도 없었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두려움도 없었고,
오직 그 순간을 누리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이 자리가 바로 공의 자리다.
바로 이 자리로 다시 돌아가 보는 것이다.

내가 문득 낯선 여행지에 섰을 때,
히말라야 고지에 홀로 우뚝 서 있을 때,
문득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이 너무나도 낯설고 낯설어,
나의 이름도, 정체성도, 외모도, 학력도, 그 무엇도 잊은 채
그저 광대한 우주 속의 공이 된 한 존재를 느끼곤 했다.
그 순간이야말로 얼마나 자유스러웠던가.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바랄 것도 없고,
그저 그 어떤 수식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한 존재가 자유로이 서 있었다.

공의 명상을 위해,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수식과 정의와 규정들을
미련 없이 내려 놓아 보자.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목록이나,
나를 규정지을 수 있는 꼬리표들을 하나씩 내려 놓아 보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
까짓, 그것 쯤 하나도 없다고 가정 해 보라.

내 집, 내 차, 내 직장, 내 위치, 내 학력, 내 외모,
지금까지 살아 온 나의 삶, 나의 가족, 내 자식,
내 꿈, 내 미래 비전, 그 모든 것들이 하나도 없었던
본래의 공의 자리로 잠시 나를 데려가는 것이다.

완전히 텅 빈 ‘제로’가 되어 보라.
아무 것도 없는 존재가 되어 보라.
그 무엇도 아닌 내가 되어 보라.
말 그대로 ‘0’, 제로가 되어 보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하나 하나 의식으로 내려 놓아 보고,
다 내려 놓은 뒤의 ‘아무 것도 아닌 나’를
가만히 느껴보고 주시 해 보라.

낯선 여행지에, 아니 낯선 별 위를
홀로 걷는 나그네가 되어
텅 빈 행성 위를 거닐어 보라.

아무 것도 아닐 때,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과연 누구인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 가 보자.

당신의 직업? 바로 그 직업을 잃었고, 가야 할 일터가 없다!
돈? 통장 잔고는 ‘0원’ 가진 거라곤 이 몸뚱이 밖에 없다.
집과 차? 물론 없다.

그러면 당신은 지금 이 자리에서 그냥 죽을텐가?
더 이상 살아 볼 도리가 없다고 생을 포기하고 말 것인가?

물론 어제까지, 아니 조금 전까지
사업이 잘 되지 않는다고 발버둥치고,
진급하려고 안달하며,
자식 성적 때문에 근심걱정하고,
집을 사려면 아직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던
그 ‘나’는 이제 꿈처럼 흩어지고 없다.

사업이 잘 되지 않는다고 발버둥칠 것도 없이
직업도 없고, 일터도 없고, 내 사업도 없다!
진급하려고 안달할 것도 없이
진급할 직장도 없고, 지위도 없다!
자식 성적 때문에 근심 걱정할 것도 없이
자식 학교 보낼 돈도 없어 학교를 다닐 수도 없다.
집을 사려고 돈을 더 벌 것도 없이
아예 집도 모아 놓은 돈도 하나도 없다.

그저 당장에 한 끼 입에 풀칠 할 일만도 버겁다.
당장에 오늘 밤에 어디에서 잘 지가 문제다.

그렇게 무소유의 공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
이제 하나 하나 제로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이제 당신은 어쩔건가?
그냥 다 포기하고 말 것인가?

아닐 것이다.
그럴 수가 없다.
그래도 어쨌든 삶은 계속될 테니까.

그런데 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텅 빈 무(無), 제로인 공 속에서
생각지도 못 했던,
놀라운 빛과
텅 빈 무소유의 자유함,
무아의 걸림 없는 툭 트인 삶의 길이 열린다.

잘 안 풀리는 사업 때문에,
안 되는 진급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걱정하기에 앞서
‘내 삶의 공성’을 사유해 보라.

‘제로’인 공성 앞에서
그 모든 문제는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
그 때 비로소 완전한 무집착의 자유함을 만끽하게 된다.

아무 것도 없어도 삶은 계속된다.

아니, 기적과도 같이
폐허 속에서 피는 꽃처럼
전혀 새로운 무한한 삶의 가능성들이 일렁인다.

그 제로의 텅 빈 바탕 위에
무엇이든 쌓을 수 있는 자유함이 서린다.
텅 빈 도화지 위에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이제 기쁘고 행복한 일만 남았다.
완전한 제로, 무소유의 상태에서라면
무엇을 하든 그 다음 부터는
어쨌든 제로에서 하나로, 둘로, 셋으로
이어지며 행복에 겨워질 수 있는 가능성들의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누구나 때때로
이런 공성의 명상을 실천해 볼 일이다.

누구나 때때로
자신의 삶에 완전한 무소유, 무아라는
텅 빈 옷을 입혀 볼 일이다.

자식과 아내가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우린 지금 돈도, 집도, 차도, 음식도 아무 것도 없다.
거기에 가족 모두 배는 고프고 춥다.
그럼 무엇을 하게 될까?
먼저 당장에 먹어야 하고 먹여야 할 음식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 때 아버지는 무엇을 해서든
일단 가족을 위한 한 끼의 음식을 마련할 것이다.

그 한 끼의 음식이 해결되는 순간,
가족 모두는 고픈 배를 달랠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아버지는 막노동이라도,
어머니는 식당일이라도 보려고 바둥거릴 것이고,
아주 작은 몸만 누일 수 있는 작디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
아이들을 눕힐 수만 있어도, 가족 모두가 함께 있을 수만 있어도
모두는 행복해 질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진급이 안 될까를 걱정하기 전에,
이 직장에서 완전히 공으로 돌아가는 사유를 먼저 해 보라.
이 직장이 없다면,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

좋은 집을 살 여건이 안 되는 사람은
그 돈을 걱정하기 전에
집도 돈도 아무 것도 없는 제로를 사유해 보라.
아무 것도 없어도
삶은 계속되고,
당신의 행복을 향한 열정은 계속될 것이다.

과연 집착이란 무엇인가?
나는 과연 무엇에 집착하고 있나?

제로, 공성, 무의 명상을 통해
비로소 과연 내가 어디에 집착하고 있었는지,
본래 온 곳인 ‘텅 빈 공’의 상태에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쌓아 왔는지,
나는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얼마나 풍요로운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은 여전히 더 벌어야 하고,
더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쌓고 쌓아야 하는 이가 아니다!

사실 당신은, 이 지구별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붙잡고 집착해 온 것이다!

처음 올 때
아무 것도 가져 오지 않았던 한 투명한 존재, 자유로운 존재가,
몇 십 년이 흐른 지금
너무 많은 것을 붙잡고 있고,
그 붙잡은 것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고,
더 많이 소유한 타인을 보며 자괴감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진짜 궁핍하고 가난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동안 이 생에서 쌓아 올린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던
바로 그 무지가 나를 가난하다는 의식으로 내몬 것은 아닌가.

오늘,
처음 이 생으로 여행을 오던 그 날로 되돌아가,
그 본래의 텅 빈 자리로 돌아가 보자.

그리고 다시 되돌아 온 뒤,
그동안 이 생에서 내가 붙잡은 것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들이며,
그것들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주 전체의 도움이 있었는지를
뜨겁게 뜨겁게 감사 해 보자.

그리고 요즘 내가 더 많이 가지려고, 얻으려고, 올라가려고 애쓰던
그 모든 욕망과 집착들이
얼마나 나를 속박하고 있었는지를 사유해 보자.

누구나 때때로
내 삶의 무소유, 공성의 명상을 실천 해 보라.

그럼으로써
자유한 나를 되찾게 될 것이다.

사실은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그렇게 앞만 바라보며,
그렇게 소유와 돈을 갈구해가며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지,
풍요로운 존재이며,
사랑받고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찬탄과 경외감에 사로잡힐 지도 모른다.

텅 빈 그 자리에서 온 우리가
때때로
고향을 그리워하듯
우리의 본향인 그 텅 빈 공의 자리를
때때로 명상해 보고, 사유해 보며,
아무 것도 없었고, 아무 것도 아니던
그 자유했던 시절로 돌아가 보는 것,
그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속 시원하고
툭 트인 길인가.

텅 빈 공으로 돌아가
모든 것들을 내려 놓아 보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들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 풍요와 감사와 자비로운 도움 속에서
그동안 이렇게 살아왔다는 사실에
감동, 찬탄, 자족,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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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스님, 그저 나 자신, 순간의 여행자, 자연주의자, 사상적 자유인, 편견 없는 삶의 관찰자, 목탁소리(moktaksori.org/net/kr) 지도법사, [날마다 해피엔딩]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행복수업]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반야심경과 마음공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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