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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달연 예쁠아 님이 제게 보시해 주신 작품입니다]

우리는 흔히 베풂과 나눔을 실천하면서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이렇게 베풀고 나눈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이를 다 구제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이 세상의 어느 한 귀퉁이
아주 작은 마을 고작 한두 개,
내지는 몇몇 사람에게 밥 몇 그릇 나누어 주거나,
교육을 뒷바침해 주거나,
아무리 도움을 준들 겨우 그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고 만다.

아무리 우리가, 내가 열심히 돕는다고 한들
그것은 너무나도 미약하여
이 세상을 밝히는데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아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내가 베푼 아주 작은 나눔의 행위가
그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아무리 작은 나눔과 베풂일지라도
이 전 우주법계를 감동시키고,
한 줄기 커다란 빛과 사랑으로써
우주법계에 기록되고 공명하여
더 많은 자비와 나눔으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갈 수도 있다.

그 어떤 작고 보잘것 없는 보시일지라도
그것은 우주법계를 변화시킨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고도 부드럽게
이 세상을 바꾸어 내는 무한한 권능을 담고서 말이다.

왜 그럴까?
내가 한 것은 고작
제3세계 어린 아이 한 명을 도운 것 뿐인데,
네팔이나 미얀마의 학교를 위해
고작 1만원을 베푼 것 뿐인데,
법보시 서적 고작 몇몇 권을 베풀었을 뿐인데,
그것이 어떻게 이 우주법계를
강력하게 자비의 빛으로 물들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물질의 차원이 아닌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질적 차원에서 내가 베푼 것은
고작 몇 만원이고,
한 두 명을 도운 것 뿐이고,
자원봉사를 며칠 한 것 뿐이지만,
정신적인 차원에서는 어떨까?

우리는 한 사람을 도울 때
뿌듯한 행복감과
도와줄 수 있었다는 기쁨과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느낌,
나의 작은 보시가 누군가를 배부르게 했다는 풍요의 느낌 등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행복한 느낌과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도울 때 중요한 것은
사실 물질적인 나눔에 있다기 보다는
도울 때의 그 행복한 느낌, 풍요로운 느낌,
상대방을 도울 수 있었다는 자신에 대한 대견하고도 뿌듯한 느낌,
누군가를 내가 돕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다는 귀한 감정
바로 그 느낌과 감정에 있다.

우주 법계가 원하는 것은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풍요와 행복과 나눔의 정신이 깃든
그 마음인 것이다!

우주법계는 그 물질적 보시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보시한 마음,
베풂의 그 풍요의 정신,
나눌 수 있다는 그 넉넉한 마음을 받는 것이다.

우주법계는 그 풍요와 나눔과 보시의 마음을 받아들여
다시금 이 우주법계 곳곳으로 공명시키고
더 많이 나누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서 나간 보시의 마음, 나눔의 마음은
우주법계라는 무한한 정보장, 불성의 장을 거쳐
이 우주법계 끝까지, 세계 곳곳에까지,
저 아프리카의 굶주린 모든 어린 아이들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인구의 정신 깊은 곳에까지
그 마음을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누군가가 보시를 행할 때,
사실 그 마음은
이 우주 전체에까지 퍼져나가
온 우주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전 세계 모든 인구의, 유정 무정의 전체 생명에게
그 마음은 비국소적으로 전달이 되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의 정보장으로 이해한다면
우리가 행한 보시의 순수하고도 귀한 마음은
온 우주의 모든 세포, 공간, 존재 전체에
정보로써 입력을 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법계는
우리의 보시 액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시할 때의 그 마음을 기억하여
그 마음의 정보를
온 우주 끝까지 비국지적인 정보장으로써
펼쳐 내는 몫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 한 사람의 보시는
우주적인 것이다.

당신 한 사람이
오늘 행한 아무리 작은 액수의 나눔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작을 수가 없다.
그것은 결코 잊혀질 수 없다.
그것은 곧장 이 우주 끝까지 전달되어
온 우주로 공명이 되고,
모든 생명에게 공명이 되어 공동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없이 고무적인 것은,
바로 그 보시의 마음들이 모이고 또 모이게 되었을 때
이 우주법계는 단순한 수치적인 것을 넘어서서
여러분이 보낸 보시의 마음과 느낌과 감정들을
그대로 우주 곳곳으로 반사해 낸다는 데 있다.

우주는 우리의 보시의 마음을 받아서
고스란히 이 우주로 그 마음을 반사하고 반영하여
더 많은 행복과 나눔과 보시의 정신이
이 우주 곳곳에 뿌리내려지도록 도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시의 액수가 아니다.
우리가 보시할 때 느낄 수 있는 그 느낌, 감정,
고양된 기분, 풍요롭고도 뿌듯한 그 마음,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특히 가르침을 보시하고, 법문을 들려주고,
지혜의 말씀을 나눔으로써
상대방을 영적인 진보와
수행의 성숙으로 이끄는 토대를 베풀어 주었다면
그것은 사소한 물질적 베풂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영겁을 이끄는 정신적인 완성의 토대가 될 것이 아닌가.

사실이 이러할진데,
어찌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보시하고 나누며 베풀지 않을 것인가.

별로 없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나누는 순간의,
베푸는 바로 그 순간의 고양된 느낌,
거기에 있는 것이다.

보시는 또 다른 보시를 불러오고,
보시는 또 다른 풍요로움을 불러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당장에
이 우주를 위해
내가 행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보시와 나눔과 사랑을 베풀라.

힘겨워하는 이웃에게,
친구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그것은 결코 그 친구와 나 사이의
개별적인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적인 하나의 사건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행한 그 따뜻한 사랑의 마음은
우주 전체에 따뜻함과 사랑을 가져다주고
공명해주고 반사해 주는 역동적인 자비의 힘이 될 것이다.

나아가 내가 행하는 하루 삶의 모든 순간들이
조건 없는 사랑, 무주상의 보시가 될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밝힌다는 고귀한 발원의 행위가 될 수 있도록,
단 하나의 행위와 말과 생각에서도
보시와 나눔을 실천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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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절제하고 말을 삼가고

그 마음을 거두고 성냄을 버려라.

도의 길을 가는 데에는 인욕이 가장 으뜸이니라.

[법구경]

 

서로 싸우지 말라.

말로써 옳고 그름을 가리려 하면 평생을 싸워도 끝이 없다.

오직 침묵으로 참고 용서하는 것만이 모든 다툼을 끝내나니

이러한 가르침이야말로 존귀하고 존귀하다.

[중아함경]

 

언쟁하지 말고, 서로 다투지 말라. 옳고 그름을 가려 승부를 내려고 하려면 평생을 싸워도 끝이 없다. 옳고 그르다는 것은 고정되게 정해진 바가 아니어서 고정된 실체가 없다. 자신에게는 옳은 것도 상대에게는 그를 수 있고, 이 상황에서는 옳은 것이 다른 상황에서는 그를 수도 있으며, 똑같은 경우라고 할지라도 인연 따라 옳고 그름이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할진데 내가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고집하면, 한평생을 싸워도 끝날 기약이 없다.

다툼과 싸움과 언쟁을 종식시키는 방법은 시비를 가려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침묵으로써 인내하는 데에 있다. 다투거나 싸울 일이 생기더라도 먼저 침묵하고 인내하라. 그러면서 내 안에서 생겨나는 화와 시비를 다스리라. 그랬을 때 참된 용서와 이해의 지평이 열린다.

언쟁이든 다툼이든 다만 침묵으로 바라보기만 하라. 침묵만이 참되다.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나면 그 어떤 말이든 옳고 그름의 판단 대상이 된다. 옳고 그른 판단은 곧 다툼과 언쟁을 가져온다. 그러나 침묵의 세계는 시비 분별이 없으며 적정(寂靜)하고 투명하다. 언쟁과 다툼을 참으로 이기고자 한다면 오직 참고 침묵하라. 침묵의 빛을 안으로 거두라. 침묵하면 항상 이긴다.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든 시비를 가려내어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것을 증명했을 때 이기는 것이 되지만, 진리의 세계에서는 옳고 그르다는 시비를 놓아버림으로써 내 안에서 시비를 끊어버렸을 때 참된 승리자가 된다. 전자의 승리는 패자를 괴롭게 하지만, 후자의 승리는 양쪽 모두를 평화로움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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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천상을 불태운다

부처님말씀 산책 2010/12/03 12:10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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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와서 해롭게 하더라도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한 생각이 불끈 치솟아 오를 때 온갖 장애가 일어난다.

번뇌가 끝이 없지만 성내는 것은 그보다 더하다.

[선가귀감]

 

치열한 번뇌에는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

이 세 가지 중에서도

성냄의 번뇌가 가장 심하니

그 불은 욕계로부터 첫째 선정의 하늘까지 태운다.

[출요경]

 

사람의 번뇌에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세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번뇌는 성냄이니, 이는 내 마음의 온갖 선한 종자들을 다 태우고, 내 안의 모든 공덕이며, 내 안의 수행력, 복력까지 다 태우고 만다. 아무리 수행을 잘 하고, 복을 많이 베풀더라도 한 생각 크게 화를 내어 상대의 마음에 두려움을 품게 했다면 그 공덕은 일시에 소멸된다.

보시 가운데 가장 큰 보시는 무외시(無畏施)로 상대방의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평안이 깃들도록 해 주는 보시다. 무외시야말로 우리가 타인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보시요 축원이다. 반대로 화를 냄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에 두려움을 가져다 주고, 상대의 마음을 어둡고 불안하게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독(毒)이다. 한 생각 불끈 치솟아 욱 하는 화가 올라올 때, 바로 그 때 온갖 장애가 일어나고 온갖 공덕이 불타게 된다.

상대방과 좋지 않은 일로 마음에 화가 올라오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 내 성냄으로써 상대를 두렵게 해서는 안 된다. 일단 화가 일어난다면 잠시 그 자리를 피하거나, 침묵할지언정 화는 내지 말라. 화가 올라오는 순간, 한 생각이 불끈 치솟아 오르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그 마음을 거두어 잘 관(觀)하라. 화가 날 때 화가 나고 있다는 것만 온전히 알아차리고 있어도 화는 멈추어진다. 불끈 치솟아 오르는 그 마음을 면밀히 관찰하고 알아차리면 금방 치솟던 화가 비춤의 광명으로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인연 따라 생겨나는 공(空)한 성냄은 비춤의 빛을 받으면 다시금 공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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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 받는 즐거움

부처님말씀 산책 2010/12/03 12:06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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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비판해 주는 사람 보기를

보물 지도와 같이 하라.

근처에 비난하는 자가 있으면

나의 상황은 더욱 나아진다.

그는 나를 가르치고 나의 잘못된 행동을 말려준다.

훌륭한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게 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를 싫어하고 멀리하게 된다.

[법구경]

 

사람들은 비판을 싫어하고 칭찬을 좋아한다. 비판하는 자를 미워하고, 칭찬하는 자를 좋아한다. 그러나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을 때, 비판처럼 감사하고 좋은 일이 없다. 비판을 듣게 되면 그만큼 나의 단점과 잘못된 점을 바로 보게 되는 길이 열린다. 내가 나를 보기는 어려워도 상대가 나를 보기는 쉽다.

상대는 비판을 하지만 나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고, 그 비판이 수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내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부분을 고맙게도 상대에게서 들을 수 있고,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은 언제나 옳다. 나는 나 자신의 상황을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다. 내가 어떤 틀에 갇혀 있는지,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 무엇인지 나 자신은 그저 대충 알고 있을 뿐이거나 전혀 모르고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어떤 한 고집 센 사람에게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만 그 센 고집을 조금 줄여줄 수는 없는가’하고 물었더니 나같이 고집 없는 사람이 또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펄쩍 뛰는 사람을 보았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알아도 자기는 자기를 모르기 쉽다. 나는 언제나 나에 대해 주관이기 때문에,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비판해 주는 벗이 있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런 비판을 듣고 수용할 수 있다면 상황은 더욱 나아진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비판을 싫어하고 칭찬만을 바란다. 지혜로운 이는 칭찬을 두려워할 줄 알고, 비판을 달콤해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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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과 단점을 들추지 말라

부처님말씀 산책 2010/12/03 12:02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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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해칠 마음을 갖지 말고

원한을 품지 말고 성내는 마음을 두지 말라.

남의 흠을 애써 찾지도 말고,

약점이나 단점을 들추지도 말고,

항상 자기 자신을 잘 단속하여

정의로써 자신을 살펴 나가라.

[잡아함경]

 

상대를 해칠 마음도 갖지 말고, 원한의 마음도 갖지 말고, 약점이나 단점을 들추지도 말라. 오직 나 자신을 보라. 내 마음의 중심을 내 안에 두라.

상대가 얼마나 잘 사는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는지, 얼마나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지, 그런 데에 관심을 두지 말라. 다만 나 자신을 보고 나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상대와 나와의 모든 비교를 놓아버리라. 나는 나로써 온전한 몫이 있다. 참된 진리가 나라는 존재로써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 이 땅에 화현한 것이다.

나를 상대와 비교하고 분별하고 나누게 되면 온갖 질투와 성냄과 원한이 일어나고, 상대에 비해 내가 월등하다거나 우월하다는 데에서 온갖 괴로움과 시비가 일어나게 된다. 모든 행복은 상대방과의 비교 없이 다만 내 안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것이지, 상대적인 우월과 열등이 행,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인 모든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 욕심충족에서 오는 우월감일 뿐이다.

이웃 모두가 연봉 1억을 받을 때 나 혼자 5천만원을 받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이웃들이 모두 2천만원을 받고 나 혼자 3천만원을 받는 것을 택하리라는 생각이 우리의 어리석은 결론이 아닌가.

다만 나 자신을 살피고 잘 단속하면 된다. 내가 왜 누구보다 잘 나거나, 누구보다 못나거나 하는데 휘둘리고 이끌리는가. 나는 다만 나일 뿐. 나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가장 당당하게 사는 길이다. 상대를 시비하지 말고, 다만 나 자신을 잘 단속하고 살펴 나가라. 상대적인 비교를 떠나면 언제나 절대적인 풍요로움과 고요함이 우리 앞에 연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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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모욕하고, 때리고, 나의 것을 훔쳤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미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는 나를 모욕하고, 때리고, 나의 것을 훔쳤다.'

이런 생각을 놓아 버려야 당신의 미움은 끝이 난다.

증오는 증오로 무너뜨릴 수 없다.

증오는 사랑에 의해 무너진다.

이것은 변치않는 영원한 진리이다.

[법구경]

 

증오의 마음을 가라앉히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근심과 걱정이 없어진다.

증오와 성냄은 독의 근본.

그래서 증오를 없애고 인욕을 실천하는 사람은

모든 성인이 칭찬한다.

[잡아함경]

 

증오는 증오로 무너뜨릴 수 없고, 다툼은 다툼으로 끝맺을 수 없으며, 원망은 원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증오와 다툼과 원망이라는 그 한 생각을 놓아버렸을 때 나의 증오도 원망도 다툼도 온전한 결말을 맺게 된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라.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그 결과는 언제나 폭력뿐이다.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부르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 증오와 미움과 폭력과 전쟁은 어느 한 쪽이 그 어두운 마음을 놓아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풀리지 않은 채 후손에게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가면서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다. 부처님을 비롯하여 인류의 수많은 성인들이 끊임없이 비폭력을 역설하고, 사랑과 자비를 역설하는 소리를 왜 우리는 계속해서 무시해야만 하는 것일까.

증오는 증오로 끝나지 않는다. 증오는 오직 사랑으로 끝난다. 다툼은 또 다른 다툼으로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오직 사랑과 지혜 그리고 용서로써만 끝낼 수 있다. 참된 사랑이란 상대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온전한 자각에서 오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이다. 내가 증오하는 상대와 증오하는 주체인 내가 둘이 아니라는 자각이 생겼을 때, 어떻게 상대를 증오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나를 증오하지 않듯, 내가 상대를 증오할 수 없다. 나와 상대를 나누는 마음은 어리석음이며, 하나라는 마음은 지혜이고 사랑이다. 참된 지혜와 사랑이 바탕이 되었을 때,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나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또 다른 나의 문제, 즉 내 안의 문제일 뿐이다.

[부처님 말씀과 마음공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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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한다.

사람들은 집착으로 기쁨을 삼는다.

그러니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기뻐할 것도 없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 없는 사람은 근심할 것도 없다.

[숫타니파타]

 

많은 사람들에게 소유가 기쁨이다. 집착하는 것을 얻었을 때 하늘을 날아갈 듯 기쁘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내 것’이라는 소유를 늘리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삶의 과제일 것이다. 자녀가 있으면 자녀로 인해 기쁘고, 돈이 있으면 돈 때문에 기쁘고, 차가 있으면 차로 인해 기쁘다. 그러나 이 모든 소유에서 오는 기쁨은 항상 하지 않으며 근원적이지 않다. 언젠가 소유물은 없어지고 만다. 소유한 것이 소멸되었을 때 그에 따른 괴로움이 동반된다. 그러나 소유하더라도 소유에 대한 집착이 없을 때 그 때 참된 기쁨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우선 당장에 달콤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마침내 근심이 되고 만다. 집착으로써, 소유로써 행복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 이면에 행복의 크기만 한 불행의 씨앗을 키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자식이 있으면 자식 때문에 기쁘지만 또한 자식으로 인해 괴롭고, 돈이 있으면 돈 때문에 기쁘지만 돈 때문에 괴롭기도 하다. 모든 소유의 기쁨은 곧 괴로움으로 바뀐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세상의 모든 집착을 놓으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소유물에 집착하지 말라. 집착 없이 소유한다면 세상을 다 소유해도 상관없다. 언젠가 소멸되었을 때 마음에 아무런 파장이 없을 것이기에. 집착이 없으면 근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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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누워도 행복하라

부처님말씀 산책 2010/09/06 20:51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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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뇌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마땅히 만족할 줄 알라.
넉넉함을 알면 부유하고 즐거우며 평화롭다.
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에 누워 있을지라도 편안하고 즐겁지만,
만족할 줄 모르면 설사 천상에 있을지라도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한 듯 하여도 사실은 부유하다.
이것을 가리켜 지족(知足)이라 한다.
『아함경』

 

세상에는 자기의 욕심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주 적고
욕심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사람도 흔하지 않다.
그저 욕심을 채우려고 애쓰다가 목숨을 마치는 사람이 많다.
설사 하늘에서 보물이 비처럼 쏟아지더라도
욕심 많은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른다.
자기 집 창고에 황금이 태산처럼 쌓였다 한들
욕심 많은 사람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사주경(四洲經)』

 

욕심을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만족이다. 죽지 않을 만큼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고, 잘 곳이 있다면, 최소한의 소유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바로 그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다. 사실 최소한의 소유만 보장이 된다면 누구에게나 행복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최소한의 의식주의 해결, 그 이상을 가지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불행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사실 의식주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사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몫은 보다 많이 벌고 쌓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마저도 소유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을 위한 나눔과 자비를 실천하는데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죽을 때 까지 욕심을 채우고 채우고 또 채우기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은 설사 하늘에서 보물을 비로 뿌려 주더라도, 창고에 황금이 태산처럼 쌓였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또 다른 욕심을 채우면서 죽어 갈 것이다. 이 말이 다른 미련한 사람들 이야기 같겠지만 사실 지금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에 이런 욕심충족의 삶을 끝장내고 만족과 청빈의 삶으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우리의 남은 생은 더욱 비참해지고 말 것이다.
참된 부자는 욕심을 많이 성취한 사람이 아니라 욕심을 많이 놓아버린 사람이며, 소유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만족이 많은 사람이다. 만족할 줄 모르면 설사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준다 하더라도 흡족하지 않지만,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가난해도 사실은 부유하다. 만족함을 아는 것, 지족이야말로 행복의 지름길이요, 인류를 살아 온 모든 성인들의 어진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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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것이 없는 즐거움

부처님말씀 산책 2010/09/06 20:41 Posted by 법상

법상20051123-073631-001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즐거움이요
욕심을 채우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자기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
진정한 즐거움은 마음에 바람이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구하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바로 괴로움이다.
마음 속에 바라고 원하는 것을 다 놓아버리면
세상의 즐거운 마음 가운데 제일이다.
『별역잡아함경(別譯雜阿含經)』

세상에는 두 가지 즐거움이 있다. 하나는 바람의 성취에서 오는 즐거움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 그 자체를 놓아버리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다. 바람의 성취에서 오는 즐거움은 영원하지 않으며, 더욱이 이 세상에서 우리의 바람을 다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괴로움이다. 바람이란 지금 여기의 문제가 아닌 미래의 문제이다. 바라는 바가 있다는 말은 지금은 불완전하며 불만족스럽고, 바람이 성취된 미래의 어느 순간을 좇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언젠가 성취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지금 이 순간은 그다지 소중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삶 전체를 놓치는 것이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때는 오직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
마음에 바라는 바가 없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의 만족만이 있다. 바람이 없다면 성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다. 바람의 성취에서 오는 즐거움을 구하지 말고, 바람 그 자체를 놓아버렸을 때 오는 즐거움을 찾으라.
세상에서는 바람과 꿈과 희망을 높이 품고 목표의식을 분명히 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상과 거꾸로 가는 가르침이라 했다. 이 가르침은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매 순간 순간이 목적지이며, 삶의 모든 순간이 내 바람이 성취 된 순간이다. ‘지금 여기’라는 생생하게 살아 꿈틀대는 현재를 투명하고 완전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희망이 현실이 되고, 꿈과 바람이 지금 이 자리에서 100% 실현되는 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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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

부처님말씀 산책 2010/09/06 20:31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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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재물 때문에 잠시도 편히 쉴 때가 없다.
논밭이 있으면 땅 걱정, 농사 걱정,
집이 있으면 가축 걱정, 의식 걱정, 돈 걱정, 집 걱정 등
소유하면 소유로 인해 걱정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렇듯 부자라고 하더라도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빈궁하고 못난 사람들도 늘 가난에 찌들려 걱정한다.
논밭이 없으면 땅이 있었으면 하고 걱정하고,
집이 없으면 집이 있었으면 하고 걱정하고,
가축이나 재물, 노비가 없으면 그것이 있었으면 하고 걱정한다.
이렇듯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가 결여되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결여하여,
이같이 살아가므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고
온갖 재물과 욕망만을 탐하고 있다.
『아미타경』

 

있으면 있기 때문에 괴롭고, 없으면 없기 때문에 괴롭다. 그러나 있고 없음의 집착을 놓으면 있으면 있어서 즐겁고, 없으면 없어서 즐겁다. 어리석은 이는 집이 있으면 집 때문에 괴롭고, 자식이 있으면 자식 때문에 괴로우며, 돈이 있으면 돈 때문에 괴롭지만, 지혜로운 이는 집이 있으면 집이 있어서 좋고, 집이 없으면 집이 없어서 좋으며, 자식이 있으면 자식이 있어 좋고, 자식이 없으면 없어서 좋다. 이 세상 그 어떤 일도 좋고 나쁜 양 면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어느 쪽을 보느냐에 달려 있다.
불교는 무조건 무소유에만 치우친다거나, 돈도 버리고, 집도 버리고, 자식도 버릴 것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있고, 집이 있고, 자식이 있고, 소유한 바가 있다면 그것도 좋다. 다만 거기에 집착해 그로인한 번뇌에 시달리며, 쓸 때 쓸 줄 모르고, 나눌 때 나눌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소유하고 있지만 그 소유에 집착하면 그로인한 온갖 괴로움이 뒤따르고, 소유하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 소유에 온갖 지혜와 복덕이 깃든다. 불교는 있다면 있어서 좋고 없으면 없어서 좋을 수 있는, 어느 쪽이라도 자족으로써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너무 있음에만 치우치는 사람들의 마음에 없음이라는 미덕, 공(空)과 무(無)의 지혜를 심어주기 위해 무소유를 가르치는 것일 뿐이다.
사고가 부정적인 사람은 늘 나쁜 것만 보기 때문에 항상 괴롭지만, 긍정적이며 밝은 사람은 좋은 면만 보기 때문에 항상 즐겁다. 그 어떤 상황도 거기에는 장점이 있고, 우리에게 도움 되는 면이 있다. 바로 그 점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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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에 몸을 맡기라

부처님말씀 산책 2010/07/27 08:10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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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을 너무 좋아하지도 말고,
새것에 너무 매혹 당하지 말라.
사라져 가는 자에 대해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고,
새롭게 다가와 유혹하는 자에게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탐욕이며, 거센 격류이며,
불안, 초조, 근심, 걱정이며,
건너기 어려운 저 욕망의 늪인 것이다.
『숫타니파타』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 다만 인연 따라 물 흐르듯 그렇게 내버려 두고, 집착 없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행한다. 물질도 마찬가지. 오는 것 애써 막을 것도 없고, 내게서 멀어지는 것을 애써 잡을 것도 없다. 경계 또한 그렇다. 오는 역경계라도 막을 것 없고, 가는 순경계라도 붙잡아 두려고 애쓸 것 없다.

익숙한 것이 떠나간다고 서글퍼하지도 말고, 새로운 것이 다가온다고 너무 매혹당할 것도 없다. 한 번 온 것은 때가 되면 갈 것이고, 또 갈 것이 가고 나면 올 것은 오게 되어 있다.

인연이 다 하면 갈 뿐, 가고 나면 또 다른 인연이 다가올 것이다. 인연이 아니라면 오지 않을 뿐, 그 인연 오지 않더라도 또 다른 인연이 올 것이다. 뭘 어떻게 하려고 하는 마음만 다 놓아버리고 살면, 물 흐르듯 그냥 그냥 살면 오고 갈 것도 없고, 좋고 싫을 것도 없고, 맞고 틀릴 것도 없고, 성공도 실패도 없고, 바램도 성취도 없고, 다 좋을 뿐. 그냥 좋고 싫을 것도 없이 그냥 그냥 그러할 뿐. 여여하게 그러할 뿐이다.

올 것들은 정확히 오게 되어 있고, 갈 것들은 정확히 가게 되어 있다. 붙잡는다고 갈 것이 오는 것도 아니고, 등 떠민다고 올 것이 가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인연에 맡기고 받아들이라.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기라. 법계의 강에 온 존재를 내맡기고 흐름을 따라 다만 흐르라.
 
이 길로 가려고 애쓸 것도 없고, 저 길로 가지 않으려고 애쓸 것도 없고, 이미 지나 온 길을 거슬러 되돌아가려고 후회하지도 말고, 아직 오지 않은 길을 빨리 도착하려고 애쓸 것도 없이 다만 온 몸에 힘을 빼고 함께 따라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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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060210-132530

 

어리석은 범부들은

나를 나라고만 보아 나에 집착한다.

그러나 필경에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나니

나를 비우고 내 것이라는 생각도 비워야 한다.

법이란 생각을 일으키면 나와 법이 생기고,

법이란 생각이 사라지면 나와 법도 사라진다.

한 생각 일으키면 세계가 나뉘고

한 생각 놓으면 세계가 고요하다.

『빈비사라왕영불경(頻琵娑邏王迎佛經)』

 

'내 자식이다' '내 재산이다' 하면서

어리석은 사람은 괴로워한다.

사실 내 몸도 나의 것이 아닌데,

어찌 자식이나 재산이 나의 것일 수 있겠는가.

『법구경』

 

‘내 자식이다’ ‘내 재산이다’ ‘내 생각이다’ ‘내 것이다’ 하는 것은 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나도 내가 아닌데, 내 몸도 이번 한 생 잠시 쓰고 나면 이 우주법계로 돌려주어야 하는데, 하물며 내 소유를 어찌 ‘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잠시 빌려 쓸 뿐이다. 내 몸도 우주 법계에서 잠시 빌어다 쓰는 것이고, 내 소유도 잠시 법계에서 빌어다 쓸 뿐이다. 그러니 집착할 것이 없다.

 

내 몸도 이 우주에서 품어 낸 온갖 음식을 잠시 빌려 유지하고 있을 뿐이고, 내 생각도 이 세상의 수많은 생각들을 인연 따라 잠시 채용하여 내식대로 조합해 쓰고 있을 뿐이며, 내 자식도 우주적인 법계의 인연과 업의 법칙에 따라 잠깐 부모의 몸을 빌어 나왔을 뿐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이처럼 다른 모든 존재들에 의지하여 다만 잠시 그 모습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 모든 존재는 우주의 것이며, 다른 모든 존재들의 것이다. 내가 곧 이 우주이며, 또한 나는 이 우주의 모든 존재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어찌 내가 누구를 가지고, 내가 무엇을 집착하고, 누가 무엇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온 우주는 전체가 전체에 의해 존재하며, 전체가 전체에 의해 소유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신성한 우주적인 것에 ‘내 것’이라는 울타리를 치면서부터 우리는 우주로부터, 진리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내 것’이란 울타리를 걷어 내면 모든 것이 그대로 있을 곳에 있고, 제자리를 찾는다. 한 생각 일으켜 ‘내 것’을 만들면 세계가 나뉘어 시끄럽지만, 한 생각 놓아 ‘내 것’을 걷어내면 세계도 나도 나뉘지 않아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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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이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알아차림’이 더딜까를 두려워하라.
망상이 일어나면 곧 알아채라.
알아채면 없느니라.
『수심결』

수많은 번뇌 망상이 일어나더라도
그로인해 마음을 괴롭히지 말라.
‘왜 이렇게 망상이 많을까’하고 답답해하지 말라.

망상을 없애려고 애쓰지 말라.
망상이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알아차림’이 더딜까를 두려워하라.
망상이 일어나면 곧 알아차려라.
‘망상’ ‘망상’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라.

망상이 올라와서
어떻게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지
물샐틈없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기만 하라.

알아차리는 순간
망상은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알아차리지 못할 때 망상이 우리를 괴롭히지,
알아차리는 순간 망상은 사라진다.

온전히 보고 있으면
그것이 우리를 뒤덮지 못한다.
망상이 일어나면 곧 알아채라.
알아채면 사라진다.


지나간 과거에 매달리지도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다리지도 말라.
오직 현재의 한 생각만을 굳게 지켜보아라.
그리하여 지금 할 일을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다만 하라.
참되게 굳은 관찰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최선의 길이다.
『법구경』

백 개의 절을 짓는 것이
한 사람을 살리는 것만 못하고,
시방 천하의 온갖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하루 동안 마음을 지켜 관하는 것만 못하다.
『매의경』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므로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없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우리들의 관념일 뿐.

시간이란 개념도 환상에 불과하다.
과거를 살아본 사람이 있는가,
미래를 살아본 사람이 있는가,
다만 우리는 영원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오직 현재밖에 없다.
현재만을 살 수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만이 영원하다.
지금 이 순간만이 실재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사는 것만이
우리 삶의 전체를 잘 사는 것이고
참된 진리와 더불어 사는 길이다.
성공적인 인생을 꿈꾼다면
오직 ‘지금 여기’라는 현재에 내 삶의 모든 것을 걸어라.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것은
다만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알아차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떠올릴 것도 없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생각할 것도 없다.
이미 지나간 것은 고민한다고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으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또한 걱정한다고 해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도 미래도 오직 현재의 자양으로써만 빛을 볼 수 있다.
다만 현재의 한 생각만을 굳게 지켜보라.
다만 지금 여기라는 현재에 내 모든 것을 걸라.
그것이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최선의 길이다.

백 개의 절을 짓는 것 보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을 살리는 것 보다
하루 동안 마음을 관하는 것이 더 보배로운 일이다.

백 개의 절을 지은들
자기 마음이 깨어있지 못하면 지옥의 불길을 면할 수 없지만,
단 한 순간이라도 온전하게 깨어나 자신을 지켜보는 것은
번뇌의 불길을 잠재우고
깨달음의 불씨를 살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부처님 말씀과 마음공부] 중에서

부처님말씀과마음공부
카테고리 종교 > 불교 > 불교일반
지은이 법상 (무한,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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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때는 들리는 것만 있게 하고,
볼 때는 보이는 것만 있게 하고,
생각할 때는 생각만 있게 하라.

『아함경』



들을 때는
오직 들리는 것만 있게 하라.

볼 때는
다만 보기만 하고,
생각할 때는
다만 그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여 비추어 보라.

어떤 것을 행할 때
다만 그것만을 행하라.

하나를 할 때는
오직 그 하나만을 우직하게 행하라.
오직 그 자체에 온 힘을 기울이고,
지금 이 순간의 모든 에너지를 쏟으라.

청소를 할 때는 다만 청소만 하고,
밥을 먹을 때는 다만 밥만 먹으라.
오직 지금 이 순간 행하는 것이
내 삶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도록 하라.
내 삶의 창조적인 작품이 되도록 하라.

또 다른 목표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지 말라.

밥 먹고 나서
빨리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밥을 먹지 말고,
깨끗해지기 위해 청소를 하지 말라.
다만 지금 이 순간 밥 먹는 일이며, 청소하는 일
그 자체가 유일한 삶의 목적지이다.

명상과 수행의 길은 쉽고도 단순하다.
‘그것을 할 때는 오직 그것만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길이다.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
온갖 생각과 분별을 하고,
청소를 할 때도
빨리 해 놓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한다.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라.
언제나 다음 순간의 목적 달성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을 허망하고 소비하고 만다.

끊임없이 바람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뛰고 달린다.
한 가지 목적을 달성했더라도 만족은 잠시 뿐이고,
또 다시 헐떡이며 뛰고 달릴 또
다른 목적을 설정한다.
죽을 때 까지 또 다른 목적을 향해 뛰고 달리는 삶,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주소가 아닌가.

수행이란
바로 그 미래를 향한 헐떡거림과 달리기를 쉬고,
바람과 목적에서 놓여나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깨어있음이란
모든 바람과 욕망과 목적을 놓아버리고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누리고 만끽하는데 있다.

모든 우리의 행위에 완전히 집중하여
오직 그것을 100% 행하는데 있다.

모든 것을 행할 때는
오직 그것이 내 삶의 전부가 되라.
그것을 행할 때는 오직 그것만 있게 하라.
다른 그 어떤 것도
지금 이 순간 목적이 될 수 없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우(愚)를 범하지 말라.
‘지금 여기’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그것이야말로 내 삶의 최종의 목적지다.

매 순간 순간 목적지에 도착해 있으라.
수행자에게는 매 순간이 완성이요, 매 순간이 목적이고,
매 순간이 열반의 즐거움이다.
 








TAG 아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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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은
집착하지 말고 다 버려라.


내 것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릴 때
세상을 소유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이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가진다고 했을 때
왜 나뭇잎을 가졌느냐고 그와 싸우겠는가.


수행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자기 소유가 아닌 물건에 대하여
애착을 버려야 할 것이니
버릴 것을 버릴 수 있어야 마음이 평온하다.


[잡아함경(雜阿含經)]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경구 가운데 하나.

"만약 어떤 이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가진다고 했을 때
왜 나뭇잎을 가졌느냐고 그와 싸우겠는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나의 소유라고 하고
'내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어찌 뒷동산의 나뭇잎이
내 것일 수가 있는가.

마찬가지로
이 대지의 한 부분을 가지고
어찌 '내 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저 대지 위를 걷는
소나 돼지를 가지고
어찌 '내 소' '내 돼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찌 한 사람을 가지고
'내 여자' '내 남자'라고 소유코자 할 수 있는가.

그런 것은 없다.
다만 모든 존재는
저 홀로 존귀하며,
저마다가 자신의 주인일 뿐이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완전히 독자적이고 독존적이지
'내 것'이라고 묶어 둘 수 있는 것은 없다.

잠시 인연따라
나에게로 왔다가
인연이 다 하면
내게서 멀어지는 것일 뿐.

과연
무엇을 가지고
소유라고 할 수 있겠는가.

본래부터
‘내 것’이 어디에 있는가.

‘나’라는 존재 또한
잠시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무상한 존재인데,
하물며 ‘내 것’이라고 붙잡아 두고
집착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뒷동산의 나뭇잎이 어찌 ‘내 것’일 수가 있으며,
땅에 금을 그어 놓고 돈을 지불한다고
어찌 ‘내 땅’일 수가 있겠는가.

'내 돈'이라고,
'내 땅'이라고,
'내 집'이라고,
'내 사람'이라고,
'내 물건'이라고,
'내 자식'이라고,
'내 지위'라고,
'내 가족'이라고,
'내 권력'이라고,
'내 종교'라고,
'내 계급'이라고,
'내 소유'라고...

그것은 인간의 오만한 생각일 뿐.

이 세상에
내가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 것’이라고
붙잡아두고, 집착하려 할 때
모든 괴로움이 시작된다.

잠시 이 세상에 살며 소유하는 것일지라도
그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할진데
내 것이 아닌 것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참된 행복은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에서 온다.

버리고 버리고,
비우고 또 비우고 나면 마음이 평온하다.

전체를 버렸을 때
비로소 전체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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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스님, 그저 나 자신, 순간의 여행자, 자연주의자, 사상적 자유인, 편견 없는 삶의 관찰자, 목탁소리(moktaksori.org/net/kr) 지도법사, [날마다 해피엔딩]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행복수업]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반야심경과 마음공부] 저자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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